남북 경제협력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통일펀드에서 지난 1년간 자금이 20% 넘게 빠져나갔다. 지난해 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미국과 북한이 큰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타협은 하지 않는 갈등 국면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통일펀드는 국내 주식에 대부분 투자하는 자산배분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남북, 미북 관계가 호전되지 않아도 국내 주식시장이 좋으면 수익률이 오를 전망이다.
◇미·북 관계 틀어지자 자금 22% 빠져나가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남북 경협 수혜주에 투자하는 국내 통일펀드 9개(설정액 10억 이상)에서 지난 1년간 359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2018년 말 통일펀드 설정액은 약 1626억원이었는데 현재 1267억원으로 약 22%가 빠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첫 회담을 가진 2018년에는 41억원이 유입됐었다.
펀드별로는 ‘삼성통일코리아증권자투자신탁 1[주식]’에서 236억7000만원이 순유출됐고, ‘하나UBS그레이터코리아증권자투자신탁[주식]’ 114억2000만원이 빠져나갔다.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증권자투자신탁(주식)’과 하나UBS그레이터코리아목표전환증권투자신탁[주식]에서 각각 17억, 12억원이 순유출됐다.
통일펀드에서 자금이 빠진 이유는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양국의 비핵화 협상이 장기간 교착되면서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도 급격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북한이 약속할 때까지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북한은 지난해에만 13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로 맞섰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북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경협 수혜주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펀드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펀드는 남북간 관계가 좋아진다해도 관련 기업들이 경협을 통해 실적을 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 투자를 망설이는 투자자들이 환매를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통일펀드, 국내 대형주 위주로 투자해 국내 증시에 좌우
통일펀드의 지난 1년 평균 수익률은 7.27%로 코스피지수 수익률(7.7%)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성과가 좋았던 해외주식형 펀드(25%)에 비해 낮지만 국내혼합형 펀드(4.2%), 국내채권형 펀드(2.4%)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통일펀드는 국내 대형주에 약 90% 투자하기 때문에 코스피지수에 가까운 수익률을 냈다. 자산운용사 마다 자산 배분 방식이 다르지만 대부분은 30~50%를 경협 관련 건설·건자재·조선 등 산업재와 소비재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코스피 대형주를 담는다.
코스피지수 수익률을 웃돈 펀드들의 공통점은 지난해 성과가 좋았던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20~30% 비중으로 투자했다는 점이다.
11.6%의 수익률을 낸 '하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증권자투자신탁[주식]ClassC-F'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12%, 9% 비중으로 투자했다. 10.5%의 수익률을 기록한 '삼성통일코리아증권투자신탁 1[주식](Cf)'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25% 넘게 투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북 갈등이 계속돼 남북 경협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북은 갈등의 수준을 높지 않게 관리하면서 갈등 국면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국내에서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적절한 수준으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올해 주식시장 호황에 대한 기대감으로 통일펀드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현수 삼성자산운용 액티브매니저는 "북한 리스크는 이미 장기화할 것이란 예상이 반영됐기 때문에 국내 증시 수익률에 투자자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고 했다. 통일펀드가 담고 있는 종목은 업황 전망이 좋은 반도체 등 IT(정보기술) 관련 업종이 많아 수익률이 양호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