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태, 저축은행사태, 동양사태, 라임사태,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사태 등 한국에서는 금융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금융사의 탐욕에도 원인이 있지만, 금융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탓도 있다. 금융교육은 개개인의 자산 축적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금융교육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살펴본다.

“한국에서 자살률이 급등하는 현상은 금융 이벤트로 봐야 합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의 자살률이 치솟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금융교육은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교육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했다. 실제로 10만명당 자살자 수 추이는 대규모 금융위기 때마다 치솟았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997년 13.1명에서 이듬해 18.4명으로 늘었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를 덮쳤을 때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03년에 22.6명으로 전년대비 4.7명이나 늘었다. 카드 사태로 저신용자가 속출했을 때다. 이후 비슷한 수준을 보이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09년 전년대비 5명 증가한 31명으로 급증했다.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던 때였다.

▲초등학생들이 금융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넘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자살률만 놓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금융의 작은 변화도 저소득층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저소득층일수록 금융위기에 더 치명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경제 전체로 보면 한국이 위기를 잘 넘긴 것처럼 보였지만,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은 낭떠러지로 내몰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교육을 받아야 금융위기에 내성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원지였던 미국은 자살률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금융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고, 각 주에서 금융교육을 학교 교과과정에 의무적으로 채택한 경우도 절반에 가깝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주가 금융교육 의무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금융교육 불모지에 가깝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 선진국, 금융 실크로드를 외치지만 가장 기본이 돼야 할 금융교육은 낙제점 수준이다. 교육부는 금융교육에 관심이 없고, 수능시험이나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다보니 학교나 학부모도 금융교육에는 뜻이 없다. 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지만 당장의 학교 교과과정을 따라가는데 급급하다보니 금융교육을 받을 시간도 기회도 찾지 못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각국 학생의 교육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인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은 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특히 수학에서는 언제나 수위권에 올라 있다. 'PISA 2015'에서 한국 학생들은 수학에서 OECD 국가 중 '1~4위'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국내 연구자들이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PISA 수학점수가 높으면 해당 국가 성인의 금융이해력도 함께 높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15세 학생들의 PISA 수학점수는 최상위권인데 성인의 금융이해력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OECD 평균(64.9점)보다 낮았다. 특히 한국은 청년 세대인 20대의 금융이해력 점수가 61.8점으로 평균보다 낮게 조사됐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5년에 조사한 세계 각국의 금융이해력 순위에서는 한국은 33점으로 아프리카의 가봉(35점)이나 우간다(34점)보다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청소년 시기 제대로 된 금융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PISA 수학점수가 높은데 금융이해력이 낮은 예외적인 모습이 한국에서 나타나는 건 국내 수학교육이 금융과 융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해외에서는 금융과목을 별도로 가르칠 뿐더러 국·영·수 등 주요 과목에 금융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해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금융'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다. 청소년참여기구인 '청소년특별회의'는 지난해 12월 교육부에 금융교육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정책 건의를 하기도 했다. 정책 건의에 참여한 홍승희양(17·양지고 1학년)은 "고3이 끝나고 사회에 나가 제대로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금융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교육의 목적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쓸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익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교육에 대한 청소년들의 목마름은 몇몇 학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인교육대 산학협력단은 2015년 금융위원회의 요청으로 학교 금융교육 실태조사를 진행해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전국 초중고 교사 650명과 초중고 학생 33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의 57.7%가 '자신에게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금융교육이 필요없다'고 답한 학생은 8.5%에 불과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는 투자 의사 결정시 기꺼이 리스크를 지려는 성향이 강하고 재무 설계도 더 적극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투자와 자산관리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게 최근 청년 세대의 특성인데, 이런 공격적인 성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금융지식은 부족하다보니 학교 금융교육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에게 금융교육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도 불만이 크다. 체계적이고 체험 중심의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교육 현장의 교사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교사들의 입장이다. 경인교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교사의 63.2%는 현재 학교 내 금융교육 분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은 10%에 그친다. 금융교육 내용을 일상에 필요한 금융지식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 교사의 비율은 절반에 가깝다.

한진수 경인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는 "몇 년에 한 번씩 금융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게 모두 금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금융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곧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 선택과목인 '경제'를 택하는 학생 수는 매년 7000여명 수준에 그친다. 2020 수학능력시험에서는 사회탐구영역을 치른 57만4319명의 학생 중 7015명만이 경제 과목을 택했다. 비율은 2.4%에 그쳤다. 2015년 수능시험에서는 이 비율이 2.9%였다. 오르기는 커녕 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경제 과목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제대로 된 수업을 받기가 힘들어서 선택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경제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 가운데 경제학을 전공한 경우는 10명 중 1명 꼴에 그친다. 일반사회나 지리를 전공한 교사가 대부분이다. 한 고등학생은 "경제나 금융에 대한 내용은 사회교과서 끄트머리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들이 진도를 거기까지 나가지 않고 학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며 "선생님들도 가르치기 어려워하고 학생들도 부담스러워하다보니 교과서에는 있는데 배울 수는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경제를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금융교육을 맡으려면 금융교육 연수라도 받아야 하는데 이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경인교대 산학협력단 보고서를 보면 최근 5년간 교사 한 명당 금융교육 연수는 평균 0.6회에 불과했고, 연수 시간도 총 13.2시간에 그쳤다. 보고서는 "금융교육을 늘리려면 교사를 위한 금융교육 연수부터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금융위가 중심이 돼 금융교육 종합 방안을 몇 년에 한 번씩 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금융교육 의무화 등은 교육부와의 이견으로 포함되지 않고 있다. 금융교육을 위한 실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도 제자리걸음이다.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금융교육 유관기관과 금융회사가 집행하는 금융교육 관련 연간 예산은 18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최근 3년간 제자리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