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경제팀이 대우차 졸속 매각…현대차그룹 독과점 체제 됐다
-사람 잘라 이익 늘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일자리 창출해야
-선진국 경영이 옳다는 건 편견…젊은 직원에게도 자율성 부여

"김대중 정부 경제팀은 빅딜을 강요하더니 법정관리 신청도 못 하도록 막았다. 나중에는 대우자동차를 제너럴모터스(GM)에 헐값에 넘겨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지난 9일 세상을 떠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014년 발간한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외환위기 이후 그룹 해체 과정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 경제팀에 대해 강한 불만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경제팀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고 대우전자를 삼성에 내주는 방식의 사업 맞교환을 강요했고 이것이 무산되자 법정관리 신청도 할 수 없도록 막았다"고 전했다.

그는 "나중에는 사재를 포함해 13조원의 자산을 채권단에 맡기면 10조원을 지원하고 대우차 포함 8개 계열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약속하고선 담보를 내놓자마자 워크아웃으로 넘겨 버리더라"며 "이는 법정관리로 갈 경우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김 전 회장은 또 "김대중 정부 경제팀에 의해 GM은 대우차 인수 과정에서 현찰을 4억달러 밖에 내지 않았는데 산업은행은 20억달러를 지원하는 특혜를 줬다"며 "한국 자동차 산업은 현대차와 대우차의 2사 체제로 갈 수 있었을텐데 (당시 경제팀의 결정으로) 지금은 독과점 체제가 돼 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7월 청와대로 전경련 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을 초청, 면담을 갖기 앞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김우중 회장

김 전 회장은 이 책에서 경영자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사람을 잘라서 이익을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일자리 셰어링(공유)을 하는데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 이후 유행처럼 번졌던 대규모 정리해고와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김 전 회장은 "직원이 잘리는 것이 무서워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라며 "경영자는 고용을 줄이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우차 정리해고 반대 집회 모습

김 전 회장은 선진국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는 편견을 깨야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은 1년에 절반 밖에 일하지 않고 휴가도 길어 정신적으로 해이한 것 같더라"며 "세계적 경영은 선진국 기업이 하고 후진국들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일"이라며 "대우는 처음부터 중간 관리자, 심지어 대리급 직원에게 2000만달러까지 계약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또 "본인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뛰니 일처리도 빨라졌고 이는 대우의 고속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원로 선배 기업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전하는데도 애썼다. 그는 "어느 정도 되면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의를 지켜 명예를 높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젊은 후배 경영자들에게 눈 앞의 이익 대신 신뢰를 얻는 일에 먼저 힘쓰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