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약 2조원을 투자해 연산 25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설립한다. 일본차 업체들이 80% 이상을 장악한 동남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은 26일 울산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나 이런 내용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대차에 세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자동차 시장의 97%를 일본차가 장악한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현대차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현지 공장 설립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적극 협조와 지원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라며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 부응하고, 아세안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현대차의 투자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조원 투자… 소형 SUV로 공략

현대차 공장은 자카르타에서 40㎞ 떨어진 델타마스 공장에 들어선다. 총투자비는 2030년까지 제품 개발, 공장 운영비를 포함해 15억5000만달러(약 1조8000억원)다. 다음 달 착공해 2021년 말 15만대 규모 공장을 가동하고, 이후 최대 생산 능력을 25만대로 확대한다. 생산 차종은 아세안 시장을 겨냥해 개발 중인 소형 SUV (스포츠유틸리티차), 소형 MPV(다목적차), 아세안 전략 전기차 등이다. 생산량 절반은 인도네시아 내수로, 나머지 절반은 태국·베트남·필리핀 등 다른 아세안 국가와 호주·중동 등에 수출한다.

26일 투자협약식 전, 조코 위도도(오른쪽)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의선(왼쪽)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356만대였던 아세안 자동차 시장은 2026년 449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세안 최대 시장인 인도네시아(115만대)는 연 5%씩 경제성장 중이고, 인구 세계 4위(2억7000만명)에 평균 연령 29세로 잠재력이 큰 나라다. 현대차는 "고객 맞춤형 선주문·후생산, 온·오프라인 판매 연계 등 생산·판매 혁신과 현지 전략 모델로 동남아 고객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미국·중국·체코·인도·터키·러시아·브라질에, 기아차는 미국·중국·슬로바키아·멕시코·인도에 완성차 공장을 갖추고, 지난해 420만대를 해외에서 생산했다. 전체 생산량의 55%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공장이 계획대로 가동되면 해외 생산량이 450만대 수준에 이른다.

◇6년 전 포기했던 동남아… 늦은 도전

356만대 규모의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제2의 일본 내수 시장'이라 할 정도로 일본차 영향력이 막강하다. 도요타·다이하쓰·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1996~1997년 일본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자 동남아로 눈을 돌렸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동남아 시장을 장악했다. 현대차는 2013년 인도네시아 진출팀을 꾸려 현지 조사를 나갔다가 "일본차 때문에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그때라도 진출해야 했다"고 비판한다. 정의선 부회장도 "급성장하는 거대한 시장 하나를 포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내부의 소극적 자세를 질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17년 아세안 시장 공략 전담팀을 다시 꾸리고 시장조사에 나섰다. 3년에 걸친 조사 끝에 이날 투자 협약에 이른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 10여 년간 성장을 이끌어 온 미국·중국 판매가 2~3년 전부터 꺾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현대차의 도전이 성공할지 주목된다. 일본 업체들의 공급망·판매망 등이 워낙 강력한 데다, 동남아 소비자들의 일본차 신뢰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차 업체 '울링'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올해 시장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점은 신규 진출 업체의 성공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동남아 시장은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현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실패하는 곳"이라며 "철저히 현지화한 제품뿐 아니라 소비자를 울리는 마케팅으로 공략한다면 현대차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