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가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GSOMIA)의 연장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소미아를 연장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우리 정부가 계속 거부할 경우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수출하는 자동차에 최대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수입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 여부에 대해 "충분한 보고를 받았다"며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에서 수입하는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180일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이달 14일이 최종 결정 시한이라고 보도했었다.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14일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고율관세 발표가 나오지 않자, 산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자동차 시장 외적인 사안들에 대해 각 해당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자동차 관세를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한국은 지소미아를 연장하라는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 미국 정부가 자동차 관세를 무기로 재차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은 지소미아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 안보를 안정시키는 핵심 축이라는 점을 근거로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풀지 않을 경우 예정대로 23일 자정을 기해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재앙'을 맞게 된다. 현재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쌍용자동차를 제외한 업체들은 모두 미국에 차를 수출하고 있는데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받게 되면 사실상 미국 수출길은 막히게 된다. 완성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까지 연쇄 도산할 수 밖에 없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67만7946대 중 32만7634대가 한국산 제품이었고 기아자동차는 미국 판매차량 58만9673대 가운데 26만8028대를 한국에서 수출했다.
특히 현대차는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에 이어 곧 출시될 제네시스 GV80과 G80 신형 모델 등을 미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최근 중국에서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는 현대차 입장에선 고율관세로 미국 수출길마저 막히게 되면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한국GM과 르노삼성 역시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한국GM은 지난해 전체 수출물량 36만9554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만5497대가 미국 수출 차량이었다. 르노삼성은 부산공장 생산물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닛산 로그의 후속 모델을 배정받지 못하게 돼 공장 문을 닫을 가능성이 커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그동안 고위 군 관계자는 물론 국방장관까지 나서 한국에 지소미아를 연장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며 "우리나라가 이를 무릅쓰고 지소미아 종료를 강행할 경우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 거부를 구실로 한국에 고율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관세는 한국보다 EU, 일본을 더 큰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를 제쳐두고 한국이 고율관세 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 정부는 EU, 일본, 한국을 각각 개별적으로 파악해 고율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쌍무적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라며 "미국이 자동차가 아닌 정치, 안보적 사안으로 관세 부과를 결정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