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번식지는 배설물 천지다. 이 배설물을 피해서 걷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지경이다. 영하 10도 정도의 기온 덕분에 냄새는 덜하지만, 그렇다고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다.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 연구팀은 남극 로스해 인근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배설물을 채집 중이다. 이 배설물을 우리나라로 가져와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고 펭귄이나 물범들이 무엇을 먹는 지, 영양상태는 어떤 지 분석한다.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이 황제펭귄 배설물을 채집하고 있다.

배설물 채집 시 사용하는 도구는 슬러시용 빨대. 한 마리에 하나씩 섞이지 않도록 사용 후 바로 교체한다. 빨대 끝 숟가락으로 배설물을 퍼 담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펭귄을 포획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펭귄이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고려해 배설물 채집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케이프워싱턴에 위치한 황제펭귄 번식지에서 방금 싼 배설물을 찾기 바쁘다. 주변 환경 등으로 인해 변질되지 않은 정확한 결괏값을 얻기 위해서다. 이날 하루 확보한 배설물 표본은 20여개에 달한다.

펭귄 배설물을 유심히 살피다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펭귄 배설물 색깔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색과 다르다. 전복 내장에서나 봤을 법한 초록색이다.

이유를 묻자 김 박사는 "황제펭귄이 산란에 들어가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품기 때문에 소화된 내용물은 거의 없다"면서 "담즙 때문에 초록색을 띠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화에 실패한 황제펭귄 알도 곳곳에 보인다.

산고의 흔적인 셈이다. 황제펭귄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는 기간만 약 115일. 우리가 그동안 쓸모없다고 취급한 똥조차 남극에선 자연의 섭리 중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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