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전략' 알디·프라이마크 가보니
PB 상품 늘리고, 인건비 낮추고
온라인 대세에도 오프라인으로 승부수
지난 5일(현지시각) 오후 7시 30분. 영국 런던 아치웨이역 근처 대형마트 알디(Aldi) 매장에는 50여 명의 소비자가 몰렸다. 학생, 아이와 함께 온 엄마, 직장인, 노인까지 모두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직원들은 상자의 앞부분만 뜯어 상품을 올려놓고, 상자가 비면 꺼내 한곳에 모았다.
인근에 거주하는 유학생 김상민(26)씨는 "알디는 시장통 같은 분위기가 나긴 하지만, 가격이 싸고 상품 질이 나쁘지 않다"며 "무거운 상품은 온라인으로 시키고 간단한 쇼핑은 알디에서 많이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알디를 찾는다는 이브라함(20)씨도 "가격이 저렴해 자체브랜드(PB) 상품이어도 상관없다"며 "브랜드가 무엇인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에도 ‘초저가’ 열풍이 불고 있다. 독일계 초저가 할인점인 알디와 리들(Nidl), 아일랜드계 SPA(제조·유통 일괄형)브랜드 프라이마크 등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점유율 8.1%로 뛴 알디… 英 할인점업계 1위 테스코도 긴장
알디는 세제, 샴푸 등 대부분의 생필품을 기존의 인기 상품을 베낀 PB 상품으로 구성한다. 알디의 생필품 판매대에는 헤드앤숄더 샴푸·양키캔들·니베아와 모양이 흡사한 1파운드(1500원) 내외 PB 상품이 줄줄이 놓여있었다.
같은 상품도 다른 마트와 가격 차이가 났다. 알디에서는 코카콜라가 100ml에 10.9펜스였지만, 테스코는 16.5펜스, 세인스버리는 32펜스였다.
1990년 영국에 처음 진출한 알디는 현재 영국 6대 슈퍼마켓으로 올라섰다. 알디는 2013년만 해도 점유율 3%를 겨우 넘었지만, 올해 점유율은 8.1%로 늘어나 영국 토종 슈퍼마켓 브랜드들을 위협하고 있다.
영국 소비자 잡지 ‘위치(which)’가 지난해 11월 1만2000명의 영국 소비자에게 ‘2019 슈퍼마켓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알디는 웨이트로스·마크 앤 스펜서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리들도 가성비로 인기를 얻으며 4위를 기록했다. 두 곳 모두 매장의 외관과 직원보다는 가격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세인스버리·테스코·아스다 등을 눌렀다.
영국 할인점 업계 1위인 테스코도 알디에 대응하고 있다. 테스코는 지난해 알디,리들과 비슷한 매장인 잭스(Jack’s)를 열었다. 잭스는 테스코 제품수(3만5000개)의 7% 정도인 2600개 제품만 판매하고 있다. 테스코는 잭스를 오픈하며 "고객에게 가장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올해 비용절감을 위해 8000명 이상 감원하기도 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유럽 전역에 진출한 알디는 전세계 협력사들을 교육해 초저가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우리도 해외로 뻗어나가 구매력을 키우고, 글로벌 소싱능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프라이마크, H&M·자라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수
초저가 선호 분위기는 영국 패션업계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옥스퍼드스트리트에 있는 프라이마크는 3개 건물의 4개층에서 의류, 뷰티용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했다. 각 층마다 있는 계산대에는 대기줄만 20~40명이 서있었다.
프라이마크의 상품 가격대는 1.8파운드(2700원)인 유아 의복부터 45파운드 남성정장(6만7500원)까지 다양했다. H&M·자라에 비해 최대 6분의 1 가량 저렴한 수준이었다. 디즈니·해리포터와 협업 상품도 10~20파운드(1만5000~3만원)면 구매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프라이마크를 찾는다는 앨리시아(28)씨는 "바구니에 상품을 가득 담는다고 해도 50파운드(약 8만원)가 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켈리(35)씨도 "영국 물가가 비싼 편인데, 여기는 비싸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서 좋다"고 했다.
프라이마크는 특히 10~20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 오피니엄이 1000명의 소비자를 조사한 결과, 18~24세 여성의 71%, 남성의 51%가 프라이마크의 패션을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프라이마크 인기에 ‘프라이마니아(pri-mania)’라는 단어까지 생기기도 했다. 글로벌 데이터는 올해 프라이마크가 영국 내 가장 큰 의류소매 업체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온라인은 포기...알디·프라이마크 승승장구 가능할까
국내 유통업계는 ‘오프라인’과 ‘초저가’로 승부수를 던진 알디와 프라이마크에 주목하고 있다. 두 기업은 아마존, 이베이 등이 장악한 온라인 시장보다는 오프라인에 치중하고, 직원을 최소한으로 고용해 단가를 낮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디는 상자째로 상품을 두고, 셀프계산대를 늘리는 방식으로 직원 수를 최대한 줄였다. 손님 혼자 계산해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상품 하나에 바코드를 세네개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알디는 가격을 낮추고 매장을 늘려가면서도 우리나라 대형마트와는 달리 여전히 흑자(2억2090만 파운드)를 유지하고 있다.
프라이마크도 창고와 온라인 쇼핑몰, 광고, 디자이너가 없는 4무(無)정책을 쓰면서 상품 가격을 낮추고, 8년째 이익을 내며 성장하고 있다. 존 베이슨 ABF 재무이사는 "프라이마크가 온라인 판매를 하면, 비용만 더 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초저가를 내세우는 유통업체만 고객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한국도 글로벌 소싱능력과 PB상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PB상품을 늘리고 초저가를 내세워야 한다"며 "온라인에서 쿠팡에 상대가 안된다면 아예 온라인을 포기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초저가를 실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영국은 아마존·이베이가 온라인에서 93% 가량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에선 아직 온라인 강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이 온라인 시장의 약 7%를 점유하고 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PB상품을 강화하고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서 찾아갈 때에는 더 깎아주는 등 초저가를 어떻게 시도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