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인트 더 낮게 잡아봅시다."
KB국민은행은 내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올해 예상치보다 2%포인트 낮게 잡았다. 실무부서에서 보수적으로 책정해 올린 계획을 부행장이 1%포인트 더 낮게 잡으라고 주문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올해 은행 경영환경이 힘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내년엔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보수적으로 경영 목표를 잡았다"고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은행들은 내년도 경영 목표를 올해보다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내년도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5일 국민·우리·하나·농협 등 시중은행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내년 경영계획을 책정하면서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ROE의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년도 ROE 목표치는 올해 ROE 예상치보다 2%포인트 낮춰잡았다"고 했다. 올해 3분기 기준 국민은행의 ROE 연 환산율은 9.82%였다. 내년도 ROE 목표치가 7.8%대 수준이라는 셈이다.
농협은행의 상황도 비슷하다. 농협은행은 지난 달 30일 열린 농협금융지주 전략회의에서 내년 경영 목표 보고수치 중 하나인 ROE를 보수적으로 잡아 보고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올해 예상치보다 1%포인트 가량 낮게 ROE 목표치를 잡았고 다른 은행도 비슷한 걸로 안다"고 했다.
시중은행 중에선 신한은행만 두 자릿수 ROE를 고수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도 두자릿 수, 내년에도 두자릿 수 ROE를 내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했다.
올해 4대 시중은행들의 3분기 기준 연 환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평균 10.34%였다. 국민은행은 9.82%, 하나은행은 9.71%, 신한은행은 10.52%, 우리은행은 11.31%였다.
ROE는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ROE가 10%라고 가정하면 자기자본 100원을 투입해 한해 10원을 벌었다는 의미다. ROE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의미다.
시중은행들이 보수경영에 나선 이유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근 3회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하자, 한국은행도 지난 10월 기준금리를 1.25%로 내렸다. 내년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은행들의 예대마진(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이)이 줄어들고, 수익이 나빠진다.
이자마진이 줄어도 대출확대가 쉽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 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황비율(DTI) 등의 규제에 가로막혀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 입장에서 안정적일 것으로 여겨지는 대기업 대출 수요는 많지 않고,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 소호대출은 늘리기 쉽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호대출 연체율이 바닥을 치고 오르는 국면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올 9월 말 자영업자 연체율은 신한은행이 전년 말 대비 0.05%포인트 오른 0.26%, 우리은행은 0.02%포인트 오른 0.25%, 자영업자 대출이 포함된 국민은행의 중기대출 연체율은 0.05%포인트 오른 0.31%였다.
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도 반영됐다. 시중은행들은 특히 일본과의 무역 마찰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부여했던 백색국가 지위를 지난 8월 28일로 박탈하고 한국을 그룹 B국가로 재분류하면서 수출규제를 전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년 예산 계획을 잡기 시작한 9월에 실무진이 가져온 ROE 목표치에서 일본과의 수출 마찰이란 이벤트를 반영해 1%포인트를 낮췄다"면서 "의미를 부여할 이벤트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은행의 ROE 하락은 피할 수 없다는 전망도 많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주요 글로벌 은행의 수익 및 구조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대비해 시중은행들이 비이자이익 부문 강화 등 수익구조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했다. 김혜미 연구위원은 "의미 있는 신규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확보한 고객 금융거래 데이터를 확인해 자산관리 수수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