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상구 세계한상대회장·K&K글로벌 대표

2002년 한국에서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던 가장(家長)은 큰 성공을 꿈꾸며 베트남에 건너갔다. 그의 나이 43세. 전 재산을 들여 하노이에 백화점을 세웠지만, 6개월만에 폐업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땡처리 옷을 떼어 판 게 화근이었다. 베트남 여성들의 하의 사이즈가 21~22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여성들의 체형은 25~26 사이즈가 제일 작았다. 한국 여성과 베트남 여성들의 체형이 다른 것도 모르고 옷을 팔았으니 사업이 잘 될리 없었다.

고상구 세계한상대회장

폐점 전 마지막 세일을 해 건진 돈이 약 3억원. 이 돈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밑천이 됐다. 백화점에서 그나마 잘 팔리던 인삼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베트남인들의 특성을 감안해 인삼을 여러 뿌리 넣은 인삼주를 진열하고 ‘Befor Drag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인삼의 모습이 용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원가보다 훨씬 높은 3000만동(150만원)의 가격표도 붙였다. 그는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팔 생각도 없었다"며 "인삼이 고급 제품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인삼주는 불티나게 팔렸다. 베트남도 중국의 꽌시(关系·관계) 문화가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 개발이 한창이던 베트남에 인허가를 받기 위해 모여든 건설업자들이 이 인삼주를 공무원 선물용으로 대거 사 가면서 이른바 대박이 났다. 하나 뿐이던 인삼 매장은 베트남 전역에 40개까지 늘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그를 ‘인삼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삼 판매를 시작으로 몸집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사업은 이제 베트남 전역에 90여개 매장을 둔 한인 마트로 덩치가 커졌다. 처음엔 한인 마트인 ‘K-마켓’으로 시작했지만 현지화 전략을 통해 지금은 베트남 현지인 비중이 80%에 달할 정도로 자리잡았다. 연 매출은 1억달러(1160억원)를 돌파했다.

지난달 24일 여수 세계한상대회를 성공리에 마친 고상구 K&K글로벌 대표(61) 이야기다. 그는 올해 대회장으로 선출됐다. 하노이한인회장, 베트남한인회총연합회장 등을 맡았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2017년에는 한상 기업 최초로 베트남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18회째 치러진 이번 행사엔 52개국 약 4000명의 한상인이 참여했다. 이번 세계한상대회에서는 K푸드 등 약 2억달러(약 2300억원)의 비즈니스 성과도 올렸다.

고 대표의 ‘절친’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태평양을 날아와 한상대회를 축하했다. 박 감독은 초창기 베트남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움을 받은 계기로 고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박 감독이 고 대표를 자신의 ‘후견인’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고 대표는 "실패와 시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신념이 성공의 비결"이라며 "성공신화는 실패 이후에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번 돈은 모두 매장 확대 등 신규 투자로 이어진다"며 "인삼이 잘됐을 때 K-마켓에 투자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750만명의 해외 한상인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이 해외에 있다보니 담보 설정이 쉽지 않아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서다. 높은 이자 때문에 사업 확장에도 제동이 걸리기 일쑤다. 그는 "해외동포 한상은 국가자산"이라며 "이들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겐 "유럽보다는 개발도상국인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꿈을 펼칠 기회가 더 많다"며 "자신이 좋은걸 찾기보다는 잘 할 수 있고 미래가 보이는 곳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