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일본인학교 정문 앞. 3~4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를 뒷자리에 태운 자전거가 학교 문앞에서 섰다. 여성의 목에는 자녀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걸려 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러 온 서울일본인학교 유치부 학부모였다. 학교에는 이런 자전거가 잇따라 들어서며 아이를 내려 놓고 있었다. 관리 직원인 최준혁(27)씨는 "아침에 자전거로 아이들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이 근처에 산다"고 했다.
#2. 지난 1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이촌1동) 한가람아파트 정문 앞. 이촌역 4번 출구에서부터 이 일대를 다니면서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일본어로 대화하는 행인을 볼 수 있었다. 인근 부동산 10여 곳을 돌아봤지만 2~3년 전에는 쉽게 보이던 부동산의 ‘일본어 상담 가능' 표지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식 상권이 형성돼있는 동부이촌동 먹자골목에서도 일본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일본인이 많이 살아 ‘서울의 리틀 도쿄’로 불리는 동부이촌동에서 일본인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일본인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떠난 사람이 많아진데다, 한일관계 악화로 가족을 동반한 주재원이 줄어든 탓이다.
이촌1동 A공인 대표는 "이 일대에 사는 일본인 99%는 주재원인데, 체감하기로는 근 1~2년 사이 주재원이 30~40% 줄었다"며 "3분의 2는 상암동 쪽으로, 나머지는 마포역 근처로 옮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가족 단위 일본인들은 학교가 있는 상암동으로, 1인 가구의 경우 월세도 싸고 편의시설도 더 많은 마포역 인근으로 이사를 떠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B공인 대표는 "이촌동에 새로 오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미군이 용산기지를 비운 데 이어 일본인도 줄면서 세를 놓는 집주인들이 한동안 세입자를 찾기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촌1동에서 일본인이 줄어든 이유로는 먼저 자녀 학교 근처로 옮긴 사람이 많다는 점이 꼽힌다. 최근 마포구에 새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동네 분위기가 점점 좋아진 영향이다. 생활 수준이 높고 일본인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선호됐던 이촌1동의 장점이 희석된 것이다.
일본인학교 앞에서 만난 한 일본인 학부모는 "아이 학교가 가까워 이촌동에서 상암동으로 왔다"면서 "상암동은 근처에 공원도 많고 조용해 마치 일본의 시골에 사는 느낌이 드는데다 아이 키우기가 좋아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깊어지며 가족을 두고 입국한 주재원이 많아졌다는 점도 이촌동에서 일본인이 줄어든 이유로 꼽힌다. 이촌1동에는 1인 가구가 살만한 오피스텔 등 소형 주택이 없다.
일본인들의 이동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시 등록외국인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용산구에 등록된 일본인은 1352명으로, 3년 전인 2016년 3분기(1711명)보다 20.8% 줄었다. 반면 상암동과 마포역이 포함된 마포구는 올해 3분기 1010명으로 2016년 3분기(928명)보다 8.8% 증가했다.
상암동 한승공인중개사사무소 윤소윤 공인중개사는 "일본인들이 동부이촌동에서 상암동으로 최근 2~3년 새 많이 왔다"면서 "먹자골목 등 상권이 조성돼있어 시끌벅적한 동부이촌동과 달리 상암동은 일본인학교도 있고 조용해서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