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식물의 자생지로 향하는 마음을 늘 설렙니다. 미혼 시절의 소개팅처럼 말입니다. 도감에도 없는 참두메부추를 만나러 얼마 전에 강릉의 바닷가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두메부추는 알아도 참두메부추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부추 박사님의 말씀으로, 중국에서는 두메부추를 산구(山韭)라고 하고 참두메부추는 유협구(扭叶韭)라고 한답니다. 유협구는 잎이 뒤틀려 있는 부추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1차 허탕 후 자생지 정보를 제공 받아 2차 방문에서 만난 참두메부추는 늦게 와서 심사가 뒤틀렸는지 잎이 살짝 뒤틀려 보이기는 했습니다. 혹시 성격마저 뒤틀린 건 아닌지 염려하며 탐색전에 들어갔습니다.
참두메부추는 잎이 나선형으로 뒤틀려 있고 폭이 4~6㎜로 약간 넓은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유사종인 두메부추는 울릉도에 많고 내륙의 몇몇 산지에서도 자라는데 잎이 곧거나 약간 낫 모양으로 휘며 폭이 6~15㎜로 넓은 점이 다릅니다.
참두메부추는 꽃줄기가 납작하니 날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두메부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생김새가 산부추에 가까운데 두메부추를 닮은 면도 있는 겁니다. 혹시 아버님이 산부추고 어머님이 두메부추가 아닌지 캐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면에 그건 예의가 아닌 듯해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를 캐보기로 했습니다. 비늘줄기 옆으로 굵은 뿌리줄기가 하나씩 뻗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 그것이 혹시 참두메부추만의 특징이 아닌가 싶어 흥분됐습니다.
하지만 두메부추도 그런 것이 달린다는 걸 나중에 확인하고는 괜한 흥분을 가라 앉혔습니다. 부추속 식물들은 그렇게 옆으로 긴 뿌리줄기가 뻗는 모양입니다.
소개팅 상대에 대한 관찰이 끝나자 그제야 사는 곳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하고 많은 장소 중에서 참두메부추는 왜 하필 그곳의 좁은 지역에서만 단출하게 살아가는 걸까요? 그것도 다른 식물과 뚝 떨어진 바닷가에서 말입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옮겨온 흙에 씨가 섞여 와 번져 자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현재는 경북 청량산과 강릉 해안가 일대가 참두메부추의 자생지로 알려졌습니다.
반면에 전부터 알고 지내던 식물의 자생지를 찾아가는 마음은 늘 걱정이 앞섭니다. 혹시 그새 자생지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건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각시수련이 자라는 강원도 고성군의 호수를 아주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곳은 각시수련 외에 순채와 통발이 함께 자라는 귀한 호수이자 꽃쟁이들의 놀이터입니다. 그 좋은 서식지가 이제는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호수 주변이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판이 되어 소음이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렸습니다. 벌써 호수 한쪽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쳐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언제 이 습지가 변형되거나 없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것이 기우가 아닌 것이, 강원도 정선군 신월리의 습지도 한순간에 다 메워지고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버린 적이 있습니다. 제대로 동정하지 못했던 그곳의 바늘꽃과 식물은 사진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이곳 호수는 남한 유일의 통발 자생지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통발로 오인했던 것은 모두 참통발이고, 진짜 통발은 북부지방에서 자라는 종인데 이곳에서도 자란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통발은 현재 월동아(越冬芽)를 만들어놓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수생식물 중에서도 물 위에 떠다니는 부유식물인 통발 종류들은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면 월동아를 만들어 땅속에 가라앉아 겨울을 보냅니다.
그러고는 이듬해에 수온이 따듯해지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생활사를 이어갑니다. 이곳의 통발은 잘 결실하지 못하는데도 어떻게 수를 불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월동아가 갈라지는 듯한 것도 있었습니다. 마치 포기나누기하듯 그렇게 개체수가 늘어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이 호수에서 자라던 수련과의 식물을 수련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게 됐습니다. 2016년에 발표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수련이 없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 미국수련이고 드물게 유럽수련이 아주 조금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호수는 흰색의 미국수련과 각시수련이 함께 자라는 곳입니다. 잎이 갈라지지 않고 타원형인 것은 순채의 잎입니다. 크고 동그랗고 팩맨의 입처럼 갈라진 면이 직선인 건 미국수련이고요.
각시수련은 잎이 좀 작고 통통한 타원형에 가까우며 미국수련처럼 갈라져 있긴 하나 갈라진 면이 곡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각시수련의 잎이 제법 큰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수련이 몇 포기 피어 있는 이 시기에 각시수련도 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오후 들어 벌어진 모습을 보고는 모두 미국수련임을 알았습니다. 사실 각시수련은 꽃이 매우 작아서 미국수련보다 훨씬 작고 자신의 잎보다도 훨씬 작게 핍니다.
연꽃이나 수련 종류들은 수매화라고 잘못 소개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수생식물이라는 이유에서 그렇게 설명하는 듯한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수생식물이 다 수매화일 거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오해로 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연하지만 꽃에서 향기를 내는 식물입니다. 향기를 낸다는 건 곤충 같은 것을 유인한다는 뜻이고, 그건 충매화라는 뜻입니다.
한라산의 고지대인 윗세오름 근처에서도 수련 종류를 본 적이 있습니다. 꽃이 연한 붉은색을 띠었는데, 2016년 보도 자료에 제시된 사진과 비교해 보면 흰색 말고 연한 붉은색의 미국수련에 가까운 듯합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까지 미국수련의 씨가 옮겨간 건지 알 수 없으나 한라산 고지대에 그런 수련 종류가 산다는 건 특이한 일입니다.
2016년 보도 자료에서는 꼬마수련의 국내 자생을 확인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내친 김에 그곳도 3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수생식물이 10월인데도 꽃이 핀다는 것부터가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소문대로 자생지가 달뿌리풀로 뒤덮여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습지의 천이가 빨리 진행되면서 그런 일이 벌어진 듯합니다. 3년 전에 왔을 때 꽃이 벌어진 걸 확실히 보고 갔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것이 후회됐습니다.
그 당시에 오후에 갔는데도 꽃이 벌어져 있지 않아 안쪽 꽃의 형태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말이 꼬마지 꼬마수련은 잎이 각시수련보다 커서 잎 크기만 보면 미국수련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형태적인 면은 각시수련과 비슷해서 갈라진 면이 곡선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잎맥을 따라서 옅은 녹색 줄무늬가 나타납니다. 각시수련도 약간 그런 무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는 좀 더 짙어 보입니다. 다른 지역의 꼬마수련도 그런 건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꼬마수련의 자생지는 달뿌리풀뿐 아니라 용버들이 들어와 자랄 정도로 육지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꼬마수련을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바뀌는 습지의 모습은 아쉽기만 합니다.
강원도의 바닷가 근처에는 그렇게 크고 작은 호수들이 습지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원래는 바다였다가 모래톱 같은 것에 의해 한쪽에 메워지면서 된 호수로, 그런 곳을 석호라고 합니다.
강원도의 석호는 매우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희귀식물의 보고입니다. 위의 식물들 말고도 송지호 같은 곳에는 갯봄맞이가 있기도 하고 대동여뀌가 자라기도 합니다.
갯봄맞이는 올봄에 와서 잘 자라는 걸 확인했는데, 대동여뀌는 이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으로도 무성하게 자라나는 달뿌리풀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서식지 환경의 변화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에게 있어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막기 어렵고, 또 함부로 막으려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마음만 답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