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하는 방문자들은 대부분 산타 루치아 기차역을 중심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역에서 계단을 내려와 바깥으로 나오면 거대한 운하 '카날 그랑데'(Canal Grande)가 기다리고 있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여기서 바포레토(Vaporetto)를 타고 운하를 건너 서둘러 목적지로 떠난다. 바포레토는 베네치아 본섬과 주변 25개 노선을 운행하는 수상버스이며 곤돌라와 더불어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물이 곧 도로, 배가 버스와 택시를 대신하는 베네치아다운 풍경이다.
118개의 작은 섬들로 이뤄진 수상도시, 여기에 400여개의 다리와 운하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도시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고 뭔가 색다른 것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배를 타기 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무대다. 베네치아는 수상도시이면서 동시에 당대 최고의 상인들 도시였다. 기업의 리더라면 더 관심이 가는 이유다.
크게 보면 베네치아 정북 방향이다. 산타 루치아 기차역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스칼치 성당을 지나 스페인 거리와 카나레조 지구를 향해 걸어간다.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굴리에 다리'(Ponte delle Guglie)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뭔가 색다른 풍경과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유대인 지구다. 16세기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그의 동족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일했던 곳이다.
1516년 3월 29일,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Doge 최고 지도자) 레오나르도 로레단은 이색적인 법령을 발표한다. 한때 빈민가와 정신병원이 있던 섬에 유대인들을 격리해 살게 한다는 조치였다.
심야 통행이 금지되고 삼엄한 출입문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게토'(Ghetto)란 용어가 탄생하였다. 비하적이고 차별적 의미다.
14~15세기 초에 해상무역 공화국으로서 베네치아가 전성기를 맞이하였던 무렵에 스페인, 독일, 프랑스, 오토만 제국 등에서 유대인이 몰려와 17세기 즈음에는 5천명으로 늘어나자 내려진 조치였다.
유대인들은 낮에 베네치아 일반 시민과 일할 때에도 남성들은 노란색 배지, 여성들은 노란색 두건을 착용해야 했다. 게토 베키오 거리(Calle del Ghetto Vecchio)에는 당시의 규정사항이 게재된 명판이 걸려있다. 지금은 많은 교량으로 연결되어 섬이란 느낌이 희박하지만 그때는 완전히 갇힌 형국이었다.
그런 상황 한가운데 탄생한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다. 등장인물이 많고 배 같은 무대장치로 인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대작이다. 본고장 영국에서도 큰 극장에서 무대에 올려야 하지만, 햄릿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셰익스피어의 명작이다.
"유대인은 눈이 없단 말이오?"(Hath not a Jew eyes?)
샤일록의 유명한 대사처럼, 이 작품은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큰 빚을 진 베네치아의 상인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돈을 못 갚아 계약대로 가슴살 1파운드를 내주게 된 주인공이 원금의 몇 배라도 더 주겠으니 살려달라 애원하지만 채권자 샤일록은 계약서대로 집행되길 주장한다. 친구들의 기지로 '피는 흘리지 말고 살을 떼가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이 스토리는 정의의 본질은 과연 어떤 것인지, 자비란 무엇인지 묻는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1590년대 후반에 쓴 16세기 베네치아 유대인의 모습이다. 당시 영국인을 비롯한 보통 유럽인들이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대인의 계약 문화도 읽을 수 있다. 유대인은 계약과 율법의 민족이다. 최초로 신과 만날 때도 특이하게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유대교는 ‘계약의 종교’이며, 구약은 ‘신과 유대민족이 맺은 계약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유대인에게 계약과 계약서는 생명과도 같다.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유대인의 성공비밀 가운데 하나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간의 계약서를 사들여 이익 올리는 ‘팩터’(factor)라는 직종도 있을 정도다. 중매인 비슷한 개념이지만 한국에는 드문 직업이다.
샤일록은 극단적인 캐릭터다. 반면 한국인은 정의 문화이기에 글로벌 무대에서 유대인들과의 협상이나 상거래에서 적지 않은 고전을 해왔다.
"거대한 이야기가 있는 작은 구역입니다."
게토지역 관광자료에 쓰여진 말이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뒤 게토의 출입문은 해체되고 유대인들은 비로소 베네치아 시민들과 동등한 처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나치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유대인들의 운명은 또 한번 폭풍우에 휩싸인다.
2차대전 발발 전 베네치아에는 1,200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베네치아의 전체인구는 15만명이었다. 아우슈비츠 등 나치 수용소로 사라진 게토 지역 유대인을 기리는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라는 이름의 동판조각이 보행자 도로에 새겨져 있다.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의 작품이다.
지금의 베네치아 게토지역은 베니스의 상인 시대와 분위기가 너무도 다르다. 게토라는 단어 속에 담긴 뭔가 음침하고 우울한 느낌, 배제와 차단, 박해와 학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다채롭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며, 대안 관광지다.
좁디 좁은 골목길과 관광객 인파에 지친 여행자에게 이 지역은 오아시스 같다. 공기가 신선하며, 제법 수목도 많아 무엇보다 도시의 산책자에게는 제격이다.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가 다섯 곳이나 있지만 현재 베네치아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약 450명에 불과하다. '베니스의 상인' 시대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2016년에는 이곳에서 게토 성립 500주년 행사가 화려하게 열리기도 했다. 난세를 헤쳐온 베니스의 상인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