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으로 핵심인력·기술 유출 현실화
"탈원전 정책 이후 국외로 나가고 싶어하는 원전 전문가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해외 경쟁사에게 이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산업에는 늘 기술유출 가능성이 있지만, 원전 산업의 경우 탈원전 정책으로 가능성이 더 커졌다."(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나라가 40년 넘게 쌓아올린 한국형 원자력발전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었다는 제보가 접수돼 국가정보원이 수사중이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 이후 원전 핵심 인력 이탈이 현실화되며 기술 유출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부가 "탈원전 때문이 아니다"면서 방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국정원은 한수원과 국내 원전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다 UAE의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Nawah)로 이직한 한국인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거론되고 있는 기술 유출 퇴직직원은 2015년에 이직한 것으로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 이전에는 기술유출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려운 반응"이라고 말했다.
◇ 탈원전 후 원전 전문 인력 엑소더스 심각…"몸 값 올리기 기술 유출 경계해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2년만에 국내 원전 관련 전문 인력의 엑소더스(대탈출)는 심각하다. 인력유출은 곧 기술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와 협력사가 국내 원전 전문가를 스카우트하는 것은 기술 정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지 않겠느냐"며 "언론은 물론 정치권, 학계, 산업계에서 수없이 경고한 인력이탈, 기술유출이 현실화 된 것"이라고 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원자력 관련 공기업 3사의 정년퇴직과 해임을 제외한 자발적 퇴사 인원은 지난해 144명이다.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한수원에서 74명이 사표를 냈고, 보수·유지 업무를 하는 한전KPS에서 49명, 설계 분야인 한전기술에서 21명이 회사를 떠났다. 공기업 3사의 자발적 퇴사자는 앞서 2015년 78명에서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121명으로 늘었다.
정 의원실은 "2017~2018년 3개 공기업 퇴직자 중 최소 14명이 아랍에미레이트 원자력공사(ENEC), 아랍에미레이트 나와 등 해외 원전 기업으로 이직했다"고 했다.
학계 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2018년 신입생은 5명 중 1명이 자퇴했다. 카이스트의 경우에도 올 상반기 2학년에 진학한 학생 중 원자력·양자공학 전공을 선택한 것은 4명뿐이다.
◇ 현실화된 기술유출…"탈원전 정책에 변화 필요"
이번에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기술은 한국형 경수로(APR-1400) 설계와 관련한 핵심 자료, 원전 운영 진단 프로그램인 '냅스'(NAPS·운전 중요 변수 감시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등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40년간 쌓아올린 핵심 기술이 유출되었다면 단순히 개발에 들어간 비용 이상의 가치를 잃게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UAE 바라카 운영사인 나와는 한국형 경수로인 바라카 원전의 정비 용역업체를 선정하면서 10~15년의 장기정비계약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정 국가나 기업에 정비계약을 맡기지 않고, 복수 국가와 기업에 공동으로 맡기거나 특정 국가의 여러 업체와 혹은 기간을 나눠 계약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는 독점 수주를 추진했던 우리 정부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다.
한 원자력학계 교수는 "외국업체가 어떤 자신감으로 바라카 원전의 장기정비계약에 한국과 경쟁하려하나 했는데, 여기에 기술 유출이라는 배경이 있던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환경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자력감독법은 원자력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부장급 인력이 3년간 국내 다른 원자력 계열 혹은 관계사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어, 국내에서 갈 곳 없는 이들은 오히려 해외로 나가고 있다"며 "기술유출 가능성이라는 관점과 국내 원전업계 인력 선순환 차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