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투자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식을 연일 팔아대면서 급락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식 관련 포털사이트 등엔 기관의 매도 공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관이 연일 주식을 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관은 지난해 코스닥시장에서 9922억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한 데 이어 올해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3조4623억원, 1조7231억원을 순매도했다. 펀드매니저들은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아 기본적으로 매수에 나설 여력이 없다. 지난해에 그나마 인기가 있었던 사모펀드도 최근엔 인기가 뚝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오해'도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구조상 기관 매매는 순매도가 더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돌려 말하면 기관 수급은 꼼꼼히 뜯어보지 않는 이상 큰 의미 부여가 어렵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해는 크게 3가지다.
①장외매수한 뒤 장내매도하면 '순매도'만 잡혀
일단 기관 매매의 특징 중 하나는 기관은 장외에서 매수한 뒤 장내에서 처분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이렇게 매매할 경우엔 순매도가 훨씬 많이 잡힐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신규 상장기업이다. 상장 전에 취득한 지분을 상장 이후에 팔면 기관 매매는 순매도만 잡힌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2015~2018년 연평균 신규상장 공모금액은 5조4282억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모금액의 80%는 기관투자자에게 배정된다. 기관이 공모 투자자금을 모두 처분한다고 가정했을 때, 공모가로만 팔아도 연 4조3000억원 이상의 금액이 순매도 규모에 누적되는 셈이다.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 증권사들은 공모 과정 이전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금액 또한 상장 이후 팔면 순매도에만 계산된다.
기관이 상장기업 전환사채(CB)에 투자했다가 주식으로 전환한 뒤 팔아도 모두 순매도로만 잡힌다. 이런 금액을 모두 포함하면, 특히 코스닥시장의 경우엔 기관 순매매 규모가 아무 의미 없는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한 관계자는 "'기관이 코스닥시장을 버렸다'는 식의 보도가 나올 때마다 바로 잡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②기타법인은 기관투자자 아니다
또 하나 특징이 기타법인이란 존재다. 기타법인은 개인이나 외국인이 아니고, 금융기관도 아닌 존재다. 계열사가 계열사 주식을 매매하면 기타법인으로 잡힌다. 큰손 개인 투자자가 절세를 위해 주식매매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요 매매 주체를 개인과 외국인, 기관 등 3곳으로만 분류한다. 기타법인은 아예 논외로 치기 일쑤다.
그러나 기타법인 매매 규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지난해의 경우 기관의 전체 코스닥 순매도 규모가 9922억원이었는데 기타법인 순매도는 2조2026억원이었다. 올해 또한 22일 현재 1조1600억원가량 매도했다. 기타법인도 개인, 외국인, 기관 외에 따로 언급해야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기타법인의 존재감이 커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메자닌(CB 등) 활성화다. 기업이 자회사 CB를 취득했다가 주식으로 전환한 뒤 파는 경우가 메자닌 시장이 커지면서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증권사들이 기타법인 매매 규모를 기관 바로 옆에 둬 투자자들이 '기타법인 또한 기관'이라고 오인하게 한다는 점이다. 일부 증권사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기관·기타법인으로 묶어 표출한다. 과거에는 기타법인 매매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었지만, 메자닌이 활성화된 지금은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③장투성향 기관들의 탈출
장기투자 성향의 기관은 주식을 수년간 보유하기도 한다. 이런 기관들은 종목별로 수익률 100% 이상을 추구한다. 만약 100억원을 투자해 100% 수익이 난다면, 이 기관은 100억원 순매수, 200억원 순매도로 잡힌다. 100억원을 샀어도 200억원을 판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이처럼 장기투자하는 펀드는 인기가 없다. 대부분 자금이 떠나고 있어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장투했던 기관들이 떠나면서, 기관 순매도 금액이 더 커보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