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현장의 치열함이 가득 묻어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체험했으며,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였고, 육지에서는 투우와 사냥, 그리고 권투를 했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갈리는 삶과 죽음의 최전선으로 현대의 비즈니스 환경과 유사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다.
헤밍웨이처럼 많은 곳을 여행한 작가도 드물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터키, 아프리카에서 쿠바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가지 않은 곳을 언급하는 편이 빠를 정도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국적인 장소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취향에도 맞다. 최초의 성공작 ‘태양은 다시 뜬다’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자.
"우리는 보틴의 2층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우리는 새끼돼지구이를 먹고 리오하 알타를 마셨다."
보틴(Botín)이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부근에 있는 전통식당을 말하고, 리오하 알타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리오하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급 붉은 포도주다. 마드리드에 출장 온 사람들이면 적지 않은 비용지출을 감수하고서라도 한번쯤 이 식당을 방문하려고 한다.
1725년에 문을 열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보틴 레스토랑의 역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밍웨이라는 작가의 영향력에 힘 입은 바 크다. 그의 마법 같은 스토리의 영향력이다.
괴테에게 로마와 이탈리아가 있다면, 헤밍웨이에게 그곳은 마드리드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아직 무명시절이던 헤밍웨이에게 깊은 영감을 준 곳이다. 1923년 처음 이 나라를 찾은 이후 스페인 내전을 거쳐 인생 후반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페인과 인연을 끊지 않았다.
유명 투우사들이 그의 친구였다. 단골 독일 맥주집인 ‘세르베세리아 알레마나’(Cervecería Alemana)에는 헤밍웨이가 투우사 안토니오 오르도네스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때문에 지금도 마드리드 사람들은 ‘돈 에르네스토’’라는 이름으로 헤밍웨이를 부르는데, 스페인에서 이름 앞에 ‘돈’(Don)을 붙이는 것은 높임의 의미다. 스페인 문화의 정수를 이해했다는 뜻으로 존중한 것이다. ‘오후의 죽음’이란 작품에서 헤밍웨이는 마드리드를 이렇게 극찬한다.
"자네가 마드리드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도시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인 곳이며, 살기에 가장 좋은 곳, 그리고 가장 멋진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고 날씨가 환상적이라는 것이지."
스페인 내전 취재 당시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정보를 교류하던 ‘무세오 치코테’는 스파이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 ‘제5열’의 배경이 되었고 지금은 마드리드 명사들의 최고의 칵테일바로 유명하다.
스페인을 열렬히 사랑한 헤밍웨이는 노란색 샤프란 짙은 향료로 물을 들인 스페인의 볶음밥 파에야 만드는 법을 너무도 알고 싶어서 스페인 요리사에게 개인 요리강습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포기하고 이렇게 말한다.
"파에야 만드는 법을 배우기위해 애쓰느니 차라리 글 쓰는데 집중하는 게 훨씬 좋았을 뻔했다."
파리 시절 헤밍웨이는 글을 쓴 다음 규칙적으로 두 가지를 즐겨 했다. 하나는 서점 ‘셰익스피어앤컴퍼니’에 들려서 책을 읽거나 그곳에서 멀지 않은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골 카페에 들려 술 마시기였다. 한편에서는 육체를 단련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에 있는 유명 카페들도 물론 그와 인연 있지만, 그가 가장 애정하던 곳은 몽파르나스 지역에 있는 ‘라 클로즈리 데 릴라’였다. 태양은 다시 뜬다’의 도입부분에 주인공이 여자친구 브렛과 함께 가서 브랜디를 마시는 곳이며, 사실은 그가 집중적으로 글을 쓰던 장소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헤밍웨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노트를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나서 웨이터를 불러 생굴 한 접시와 달지 않은 백포도주 반 병 주문했다. 글을 끝내고 나면, 마치 사랑을 나누고 난 것처럼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이번 글은 잘된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다시 읽어보아야 얼마나 좋은 글인지 알게 되겠지만."
헤밍웨이의 글에는 왜 먹고 마시는 이야기가 이토록 많이 나올까? 그것도 가상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의 식당 이름들이 자주 등장한다. '배고픔은 최고의 가르침이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몹시 궁색했고, 나는 점심 초대를 받았다고 말하고는 두 시간 동안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멋진 식사를 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아 적게나마 돈을 절약하곤 했다. 스물 다섯 나이에 건장한 체구를 타고난 나는 끼니를 거르면 몹시 허기가 졌다. 하지만 배고픔은 나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해주었다. 나중에 보니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식욕이 강하거나 미식가이거나 혹은 식탐이 있거나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파리의 리츠 호텔은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이 세상 마지막 머물다 간 곳으로 유명한데, 그 안에 ‘바 헤밍웨이’가 있다. 이름 그대로 라이프지 표지 사진과 타자기, 신분증 등 온통 헤밍웨이 흔적으로 실내를 꾸몄다.
최고급 호텔답게 ‘블러드 메리’ 같은 칵테일 한잔 가격이 30에서 35유로, 한국 돈으로 4만원 내외다. ‘헤밍웨이 스타’라는 이름으로 신문형식을 갖춘 메뉴판을 기념으로 갖고 싶으면 10유로를 내야 한다. 이처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파리와 스페인은 헤밍웨이가 묘사했던 그곳과 너무 다르다. 애틋함과 낭만적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바 헤밍웨이’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다. 고객들에게 로고가 새겨진 몽당연필을 무료로 주는 것으로 갈증을 달래준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꿈은 만져져야 하는 법인가? 메모지에 몽당연필로 조용히 뭔가 적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몽당연필이란 치열함이며 고독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Stay Hungry’라는 외침도 헤밍웨이의 몽당연필 정신과 다름 아니다. 힘들수록 몽당연필을 잡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