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1위를 놓고 경쟁하는 미국 인텔이 다음 달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인텔 옵테인 DC 퍼시스턴트 메모리'를 출시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인텔은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압도적 강자다. 인텔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내세워 삼성의 앞마당을 공략하는 것이다. 인텔의 신제품은 비메모리인 CPU(중앙처리장치)에다 데이터를 처리·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를 결합해 쓰는 방식이다. 인텔코리아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형 컴퓨터(서버)에 CPU와 D램·낸드플래시를 각각 탑재해야 했지만, 이 반도체는 데이터 저장과 처리 기능을 하나로 묶어 놔 훨씬 간소해졌다"고 했다.
올 들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하강하고 있지만,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개발 경쟁은 오히려 불붙고 있다. 신기술 경쟁은 향후 3~5년 내 시장 구도를 흔들 파괴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기술 후보들은 이론상으론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력인 D램이나 낸드플래시보다 1000배 이상 좋은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D램에 이어 M램 장악 노려…SK하이닉스도 M램 개발 중
반도체 기업이 꿈꾸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는 D램의 데이터 처리 능력과 낸드플래시의 데이터 저장 능력을 통합한 것이다. D램은 전력이 연결되면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지만 전력이 끊기는 순간 데이터가 사라진다. 낸드플래시는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차세대 반도체의 유력 후보는 자기장을 활용한 M램과 물질의 상(相) 변화를 활용하는 P램이다. M램은 자기장의 당기고 미는 힘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한다. 자력 기반이라 전력이 꺼져도 데이터는 그대로 저장된다. P램은 전력량에 따라 결정·비결정 상태로 바뀌는 물질을 활용해 데이터를 처리·저장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M램 기술에, 인텔은 P램을 활용해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28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의 eM램(내장형 M램)을 선보였다. 삼성전자가 2000년대 초반 M램 개발에 뛰어든 이후 첫 양산 제품이다. 이 제품은 디지털카메라·프린터 등에 탑재되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내장돼 데이터 처리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지분 인수를 완료한 일본 도시바와 공동으로 M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도시바는 M램 분야에서 삼성 못지않은 기술력을 축적한 것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25일에는 차세대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기술인 ZNS(Zoned Name Space)를 공개했다. 이 기술은 SSD의 내구성을 이전 제품보다 4배 이상 키운 게 특징이다.
반면 인텔이 내달 선보이는 옵테인 메모리는 P램 기술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텔이 마이크론과 함께 개발한 기술인 '3D 크로스포인트'는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저장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내구성이 기존 낸드플래시보다 1000배 이상 좋아지면서 D램에 필적할 정도로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차세대 기술력 과시…팽창하는 메모리 시장 노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는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스마트시티의 등장으로 폭증하는 데이터양의 처리·저장에 필요한 기술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올해 차세대 제품을 속속 선보이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시장성이 아니라 수년 뒤의 미래다. 신제품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소량만 먼저 팔아도 시장 선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의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2010년만 하더라도 전체 시장에서 메모리의 비중은 22.4%였지만 작년에는 33.7%였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가 곧 전체 시장의 패권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후 다시 도래할 호황기를 기술로 선점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