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업계에도 복고(復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이 '빈티지 시계'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안 셀모니(61)씨가 손목을 뻗어 차고 있던 시계를 보여줬다. 1945년에 제작된 스틸 소재 '캘린더4240' 모델이었다. 세월의 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반질반질 잘 관리된 시계는 오히려 유행을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제조업체다. 1755년 스위스에서 설립돼 264년간 역사를 이어왔다. 스위스 리치몬트그룹 소속으로 IWC·예거르쿨르트·랑에운트죄네·파네라이·피아제 등 8개 명품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분류된다. 시계 값은 1000만원대에서부터 수억원에 달한다.
그런 바쉐론 콘스탄틴이 이달 초 한국 시장에 18점의 빈티지 시계를 선보였다. 빈티지 시계는 50~100년 된 시계를 일컫는 말이다. 통상 100년 이상 된 시계는 앤티크 시계라고 부른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0여년 전부터 일부 매장을 통해 빈티지 시계를 팔다가 3년 전부터 아예 '헤리티지(heritage·유산) 부서'를 만들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새 제품을 파는 것보다 '남는 장사'는 아니다. 시계 경매, 고객 의뢰 등을 통해 확보하는 최상급 빈티지 시계가 연평균 75개에 불과하다. 그런 시계를 일일이 분해해 3~6개월간 수리 과정을 거친다. 그 시대에 썼던 부품이 없으면 설계도를 보고 똑같이 복원한다. 이렇게 완성된 시계는 새 제품보다 가격이 높지 않거나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통 시계 산업은 2015년 '애플워치'의 등장으로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일본 세이코가 1969년 말 쿼츠(전자식) 시계를 출시한 것과 맞먹는 변화다. 셀모니씨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꺼낸 '헤리티지 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메일·날씨까지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는 훨씬 실용적인 상품이 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시계를 예술 작품으로 대합니다. 가는 길이 다르죠." 이번에 한국에 출시된 빈티지 시계 제품 가격은 1100만원대에서 4억5000만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