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3시 충남 아산 유성기업의 부품 검사실. 400㎡(약 1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커다란 패널로 절반이 갈라져 있다. 한쪽은 민주노총 소속 직원, 다른 한쪽은 비(非)민주노총인 제2·3 노조 소속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회사 측은 "민노총 노조원들이 비민노총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해 2~3년 전부터 서로 마주하지 못하게 분리해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노총 소속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지 한 달이 넘었다. 비민노총 직원들도 하루 4시간씩 부분 파업하고 있다. 검사실 벽과 천장에는 '이판사판 투쟁' '꺼져라' '같이 죽자' 같은 섬뜩한 문구들이 빨간 글씨로 곳곳에 쓰여 있었다.
생산 라인은 더 심각했다. 3900㎡(1만2000평) 규모의 공장에 1000여 대의 기계가 있는데, 이날 가동된 기계는 고작 100여 대에 불과했다. 비노조원인 관리직 직원 60여 명이 생산 라인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공장에서 근무 중이던 영업팀의 한 직원은 "주문 물량을 어떻게든 맞추려고 모두 생산 업무에 투입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이 노무 담당 상무를 집단 폭행해 논란을 빚은 유성기업 공장 생산 라인은 이런 모습이었다. 2011년 차량 부품인 피스톤링 시장 점유율 80%, 매출 2987억원, 직원 705명으로 승승장구하던 유성기업은 작년 점유율 40%, 매출 2500억원, 직원 627명 규모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8년째 노사 분규… 유죄 사건만 64건
유성기업의 파행은 2011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은 주·야간 2교대이던 근무 방식을 주간 2교대제로 바꾸고, 월급제를 도입하라며 파업했다. 사측은 직장을 폐쇄하고 노조원 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법정 다툼으로 가서 결국 대법원은 사측이 무리한 직장 폐쇄를 했다고 판결했고,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월급제, 해고자 복직 등을 놓고 노사 분규가 이어지고 있다. 민노총 노조 측은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이 비민노총 노조와만 교섭을 하는 등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올 10월 초 해고 노조원 11명이 무효 소송에서 이겨 복직하면서, 노사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고 설명한다. 지난 7년 동안 파업이 반복되고, 직원들도 민노총과 비민노총 노조로 나누어져 갈등이 반복됐다. 2011년부터 폭행, 감금, 재물 손괴 등으로 민노총 소속 직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만 64건에 달한다.
◇주문 물량 시한 맞추느라 항공비까지 물어야… 점점 막막한 앞날
지금 유성기업에는 노사 갈등 못지않은 또 다른 불똥이 발등에 떨어져 있다. 한 완성차 업체로부터 멕시코 수출용 차량 부품 11만5000세트를 주문받아 이달 말까지 보내야 하는데, 절반가량인 5만7600세트만 겨우 납품한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부품 한 개라도 공급이 안 되면 공장 라인 전체가 멈추기 때문에 납품 기일 엄수는 필수이다. 이 회사 임원은 "납품 기일이 늦어져 선박으로 보낼 부품을 항공기로 긴급 수송해야 한다"며 "이마저도 날짜를 못 맞추면 최대 시간당 수천만원의 천문학적인 지연 보상금을 물어야 해 앞날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의 향후 전망은 더욱 예측 불허이다. 영업 직원들이 발로 뛰어 물량을 확보해도 정상적인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 대기업으로부터 엔진 부품 40만개를 주문받았지만 "납품 기한을 도저히 못 맞춘다"며 포기했다.
올해 유성기업의 매출은 작년 수준(2500억원)에도 미달이 확실하다. 주력 상품인 피스톤링 등의 제품 부문은 2014년부터 적자다. 이기봉 부사장은 "적자 부분을 빈 공장 임대 등 영업 외 이익으로 메워왔는데 자동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며 "잦은 파업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 시장을 경쟁사에 다 뺏긴 처지라 상황이 나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론보도] "유성기업 공장선? 민노총·非민노총 '칸막이'치고 근무" 관련
본지는 2018년 12월1일자 '유성기업 공장선?민노총·非민노총 '칸막이'치고 근무" 제목의 기사에서 '민노총 직원들이 업무를 방해해 2~3년 전부터 서로 마주하지 못하게 분리해서 일하고 있다'는 회사측 주장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총 유성기업지회에서는 "칸막이를 설치한 것은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의 업무방해 때문이 아니며 위 칸막이로 나누어진 작업공간이 민주노총·비민주노총으로 구분된 것도 아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