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잘되는 백화점에 입점하려면 소비자가 없는 지방 점포에 무조건 들어가야 해요. 서울은 괜찮지만 지방은 적자입니다. 그곳에선 매출이 0원인 날도 자주 있어요."(중소 패션업체 사장 A씨)

요즘 한국의 대형 백화점은 몰락하고 있는 미국 백화점과 비슷한 모습이다. 온라인 유통시장은 급성장하는 사이에 백화점 등 전통 오프라인 시장은 5년째 성장이 멈췄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 매출은 2017년 29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29조9000억원)보다 2% 가량 줄어든 수치다.

국내 백화점 시장은 2012년 이후 5년 연속 매출이 29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고속 성장을 거듭했지만 최근 3∼4년간 경기침체와 소비 트렌드 변화, 유통규제 등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빅3'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새 점포를 열지 않을 예정이다.

박주영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비 트렌드가 저가 상품을 사거나 아주 비싼 명품을 사는 식으로 양극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백화점 대부분이 중가 브랜드를 선보이며 매출이 줄고 있다"고 했다.

◇한국 백화점 직매입 비중 10%...美·日 7분의1 수준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통 백화점의 고전을 사업 구조적 문제에서 찾고 있다. 국내 백화점은 미국의 ‘디파트먼트 스토어(Department Store)’와 비슷한 쇼핑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일본의 사업구조를 도입하면서 직매입보다는 사실상 부동산 임대업에 가깝다.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 전경

브랜드에 매장을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 부분을 임대수수료로 받는 식이다. 백화점 입장에선 재고 부담이 없어 선호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백화점 사업자간, 점포간 상품과 가격 차별화가 어렵다.

천편일률적인 백화점 쇼핑환경은 소비자 구매력을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 백화점이 다양한 카테고리 상품을 직매입하는 비중이 70% 이상이고, 일본이 40% 이상 직매입을 하는 반면, 한국 백화점의 직매입 비중은 10%도 안된다.

직매입이란 백화점이 유통되는 상품을 직접 구매하고 재고까지 책임지는 운영 방식을 도입한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백화점별로 똑같은 브랜드라 하더라도 디자인과 가격이 다른 제품을 소비자에 제공할 수 있어 각기 다른 상품과 가격을 무기로 한 차별화가 가능하다.

특히 임대업에 치중한 유통구조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재고 위험을 부담하는 입점업체들은 가격을 낮추기 어렵고 백화점이 40% 이상의 중간마진을 가져가다 보니 소비자들은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는 결국 소비자가 백화점에 발길을 돌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백화점 식당가를 제외하면 패션 브랜드 매장 매출은 해마다 줄고 있다. 백화점은 매출의 일정 부분을 임대료로 받는데, 매출이 줄면서 임대료 수익도 감소했다.

◇ ‘똑같은’ 백화점 탈피...新 오프라인 공간 개발 필요

전문가들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 전통 오프라인 점포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직매입 비중과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늘려 업체간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의 오프라인 점포는 ‘경험’이란 측면에서 온라인보다 유리하다. 소비자의 경험이란 결국 보고, 듣고, 먹고, 만지며 느끼는 인간의 오감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IT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도 경험 제공 측면에서 사이버 공간이 현실적 공간의 위상을 압도하기는 어렵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대형마트 홀푸드를 인수하고, 아마존고·포스타·아마존북스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늘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 1·2위 쇼핑몰인 두바이몰과 몰 오브 에미레이츠는 사막이라는 입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도입해 연 매출 8조원을 내는 쇼핑센터로의 위상을 확보했다. 고객들에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제공한 결과다. 10만평 규모의 매장엔 아이스링크와 아쿠아리움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과 사막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실내 스키장이 들어섰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복합쇼핑몰‘몰 오브 에미리트’내에 있는 대규모 실내 스키장.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이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오프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융합하고 소비자에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2016년 전국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쇼핑 스타일을 조사한 결과 온라인과 오프라인 쇼핑을 병행하는 ‘크로스오버 쇼퍼’는 67%를 차지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병행 사업자의 온라인 매출증가율은 2011년 1.5%에서 2016년 4.6%로 늘었다. 이는 순수 온라인 쇼핑 매출 증가율을 웃도는 결과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백화점을 굳이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며 "백화점을 공원, 피크닉 공간 등 관광지처럼 꾸며 고객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