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은 전등을 꺼주세요.'
1971년 4월 미국 시애틀의 시택국제공항 부근에 세워진 옥외광고판 내용이다. 지역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상황을 과장한 광고다. 시애틀이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 명의 부동산 중개인이 아이디어를 내고 광고비를 댔다. 방문객들이 광고를 보고 시애틀이 텅 비어간다고 생각했다가 시내에 들어가서는 "멀쩡하네"라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을 기대하고 만들었다. 극단적인 과장을 통한 반전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이런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지역 사회의 거센 반발 때문에 보름만에 광고를 내려야 했다.
당시 시애틀 분위기는 매우 암울했다. 이 지역 최대 기업인 보잉의 잇단 감원 조치로 직원수가 10만6000명에서 4만명으로 2년만에 6만여명이나 줄어든 타격이 컸다. 더욱이 1만명 이상 추가 감원이 예고돼 있었다. 또 다른 주력 산업인 목재산업도 사양화 추세가 뚜렷했다.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기에 광고를 보는 주민들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시애틀을 가리켜 ‘절망의 도시’라고 했다. 미국에서 중고차나 중고 가전제품 등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식품을 구입하고 월세를 내기 위해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고 있다고 했다. 도시 전체를 거대한 전당포에 비유했다.
하지만 시애틀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도시중 하나다. 실리콘밸리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혁신 거점으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적 같은 변화다. 그 출발점은 1979년 1월1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이름의 작은 기업이 이날 시애틀로 이전했다. 그 때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거대한 도약의 첫걸음이었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1975년 MS를 창업한 곳은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였다. MS의 첫 고객인 MITS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계산기 제조업체였던 MITS는 인텔 8080칩을 채택한 세계 최초의 PC ‘알테어 8800’을 개발했다. 게이츠와 앨런은 이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 ‘알테어 베이식’을 개발하고 MS를 창업했다.
MS는 순탄하게 성장해 1978년 매출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직원은 13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를 이전하기로 했다. MITS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고객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굳이 앨버커키를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두 창업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애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IBM이 PC 기본 운영체제로 MS-DOS를 채택하면서 MS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한때 전세계 PC 운영체제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다. 그 영향으로 시애틀에 실력있는 인재들이 모여 들었고, 벤처 투자를 비롯한 창업 지원 서비스가 발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1994년에는 시애틀 역사에서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 창업이다. 공교롭게도 베이조스는 앨버커키에서 태어났다. 그가 고향이 아닌 시애틀을 선택한 이유는 자금·기술·인재 등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MS가 아마존이라는 또 다른 IT공룡의 탄생을 이끌어낸 것이다.
MS와 아마존의 시애틀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합쳐서 6만명 정도 된다. 대부분 고임금을 받는 첨단기술 인력이다. 여기에 더해 두 회사는 시애틀 지역에서 30만개 가까운 서비스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했다. 노동경제학자인 엔리코 모레티의 추산이다.
MS와 시애틀은 기업이 도시의 운명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시 재생에서 기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업체인 퀴큰 론스(Quicken Loans)와 디트로이트도 그런 케이스다.
퀴큰 론스 창업자인 댄 길버트 회장은 지난 2010년 고향을 살리기 위해 본사를 디트로이트 시청 부근으로 옮겼다. 당시 디트로이트 도심 지역은 슬럼가에 가까웠다. 낡고 텅 빈 건물이 즐비했고,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대낮에도 음습하고 위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곳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길버트 회장은 여기서 더 나가 부동산 개발회사인 베드록을 설립해, 도심 빌딩에 투자했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100개 이상의 빈 건물을 인수하고 개발했다. 도심 본사 직원수는 당초 1700명에서 1만7000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자극받아 다른 기업들의 투자도 살아났다. 범죄도시, 파산도시였던 디트로이트가 이제는 도심 재생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시애틀과 디트로이트는 특정 기업의 선도적 역할과 함께 기업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혁신도시 정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간 기업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이전을 통한 관(官) 주도 개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이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0년 넘도록 마중물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또다시 ‘혁신도시 시즌 2’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을 더 확대하겠다고 했다.
근본적인 정책 재검토가 없이는 ‘혁신도시 시즌 1’의 실패와 낭비를 되풀이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경제를 살리고 혁신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맞춰 혁신도시에 대한 접근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시애틀의 경제 기적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 재생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