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하루였다. 액면분할 발표 이후 치솟은 삼성전자 주가 덕분에 온종일 상승 흐름을 보이던 코스피지수가 장 막판 쏟아진 삼성전자 매물 때문에 결국 이틀 연속 하락 마감했다. 전날부터 지지부진했던 코스닥지수도 이틀째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외국인과 기관은 유가증권시장에서는 2거래일째, 코스닥시장에서는 3거래일째 ‘셀(sell) 코리아’를 이어갔다. 특히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 6000억원 이상의 순매도 폭탄을 날렸다. 외국인이 코스피 종목을 6000억원 이상 내다판 건 2015년 8월 24일(7238억원) 이후 약 29개월만의 일이다. 더구나 이 매도 물량은 삼성전자 한 곳에 집중됐다.
◆ 삼성전자, 개인은 사고 외국인·기관은 팔고
31일 코스피지수는 전거래일보다 0.05%(1.28포인트) 하락한 2566.46에 장을 마쳤다. 개인이 7963억원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유도했으나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637억원, 1852억원 순매도하며 갈 길 바쁜 코스피지수를 끌어내렸다.
전날 하락 마감한 코스피지수는 이날 초반에도 약세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주식 1주를 50주로 분할하는 내용의 액면분할을 발표하자 곧바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오전 9시 36분 이후 오름세로 전환한 코스피지수는 장 마감 때까지 순항을 이어갔다.
코스피지수에 활력을 불어넣은 건 단연 삼성전자(005930)였다. 액면분할을 호재로 인식한 자금이 몰리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종일 4%대의 상승세를 유지했다. 장중 한때 8% 이상의 상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동시호가에서 삼성전자 매물이 대거 쏟아지면서 이 회사 주가도 전날 대비 0.20%(5000원) 상승에 그치고 말았다. 종가는 249만5000원이다. 덩달아 코스피지수도 하락 마감하게 됐다.
수급의 대부분은 삼성전자에 몰렸다. 외국인은 6637억원어치를 내다팔았는데, 이중 6155억원을 삼성전자 순매도에 썼다. 기관도 순매도 1852억원 가운데 1132억원을 삼성전자 매물 출회에 사용했다. 반면 개인은 전체 순매수 7963억원 중 7036억원을 삼성전자를 사들이기 위해 썼다.
이경민 대신증권 마켓전략실 팀장은 “삼성전자 이슈가 삼성전자 주가에 긍정적인일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원화 강세 압력에 실적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상황에서는 주가의 상승 탄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000660), 현대차(005380), POSCO, 삼성물산(028260), 삼성생명(032830)등 주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전날보다 좋은 주가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를 이겨내진 못했다. LG화학(051910), NAVER(035420), SK(034730)등은 하락 마감했다.
업종별로는 보험(2.60%)과 운송장비(1.56%), 종이·목재(0.83%), 유통(0.55%) 등이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비금속광물(-1.08%), 통신(-1.00%), 의약품(-0.84%) 등은 약세를 나타냈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0.80%(7.39포인트) 하락한 913.57에 거래를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781억원, 178억원 순매도했고 개인이 1983억원 순매수했다.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068270)과 신라젠(215600), 바이로메드, 셀트리온제약(068760), 포스코켐텍 등 주요 시총 상위 종목이 부진했다.
◆ “삼성전자 액면분할 전후 상황 예의주시”
전문가들은 시장의 관심이 당분간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전과 후 상황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 거래가 오는 4월 25일부터 5월 16일(예상)까지 정지될 예정인데, 이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거래 정지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기관투자자가 리스크 회피를 위해 거래 정지 전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할 가능성과 거래 정지 기간에 삼성전자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 재상장일 주가 급변에 따른 시장 충격 등을 꼽고 있다.
이에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은 거래 정지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조선비즈 2018년 1월 31일자 ‘[단독] "삼성전자 거래정지 최대한 단축"…거래정지 충격 대응TF 만든다’ 기사 참조>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액면분할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변하는 건 없다”면서도 “그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비싸서 사지 못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된 점은 수급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영곤 하나금융투자 투자정보팀장도 “삼성전자의 주주환원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며 “저평가돼 온 삼성전자 주가가 일정 부분 재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액면분할 이후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민규·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667건의 액면분할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들며 “평균적인 주가 흐름은 액면분할 공시 이후 상승하지만,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