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전라남도 포스코 광양제철소 ‘CEM(Compact Endless Cast & Rolling Mill)’ 공장을 찾았다. 건물 15층 높이의 공장에 들어서자 새빨간 쇳덩이를 식힌 냉각수가 수증기로 변해 천장까지 솟구치고 있었다. 냉각을 위해 쓰이는 고압수의 압력은 210bar. 공기 저항이 없다면 분수를 2100m 높이로 쏘아 올릴 수 있는 힘이다.

10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 설비의 시작 지점에 섰다. 쇳물을 부어 ‘슬래브(쇳물을 굳힌 철강 반제품)’가 되는 순간부터 열연강판 완성품이 될 때까지 한 공정 라인으로 이어진 장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1548도로 불타오르던 쇳물은 186m의 라인을 지나며 굳어지고 압착된 후 식혀져 검은색 열연강판으로 말려 나왔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경.

포스코가 자랑하는 고부가가치 기술 CEM 공정의 특징은 ‘연속성’이다. 쇳물을 반제품 슬래브로 만드는 ‘연주공정’과 슬래브를 얇은 강판으로 만드는 ‘압연공정’을 통합했다. 쇳물에서 완성품까지 쇳덩이가 하나로 연결돼 생산속도가 빠르고 품질이 좋다.

기존에는 슬래브를 생산하는 연주공정과 슬래브로 열연강판을 만드는 압연공정의 속도가 달라 주조와 압연의 연속 공정이 불가능했다. 포스코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주공장의 속도를 높여 연속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고객사의 주문에 따라 강판의 두께와 폭을 연속적으로 조절하는 공정을 개발하기 위해 2년여간의 테스트기간을 거쳐 2012년부터 100%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CEM 공정은 같은 생산량의 기존 열연공장 대비 운영비를 93%, 투자비는 82% 수준으로 낮췄다. 600m 이상인 기존 열연생산라인과 달리 총 길이가 186m에 불과해 공장 면적도 40%로 줄었다.

포스코는 2011년 5월 CEM 공식 상표를 등록한 데 이어 CEM 기술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술 판매 및 엔지니어링 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철강판매 외에도 기술 판매로 수익성을 높이기로 했다.

CEM은 파이넥스(FINEX)에 이어 포스코의 대표적인 공정 혁신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2007년 상용화된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고로에 넣고 쇳물을 만드는 기술로 소결 등 원료 전처리 공정을 생략해 공정 효율성과 원가 절감 효과를 달성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독일 SMS그룹과는 CEM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또 파이넥스와 CEM을 결합한 연산 200만톤 규모의 중국 충칭철강 일관제철소 건설프로젝트(33억달러 규모)와 관련해 포스코가 기술을 이전하고 투자비 대비 3~5%의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제철소 10여곳과 CEM 기술 수출을 협의 중이다"라며 “올해 5월에는 세계 1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 CTO(최고기술책임자)가 방문해 CEM 설비를 둘러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 더 얇고 더 강한 제품 생산하는 CEM공정, 포스코 ‘라이벌’들도 탐내

CEM은 기존 열연강판은 물론 두께 1mm의 고부가가치강 열연극박재(1.6mm 미만의 강판)도 생산한다. 최근에는 0.8mm ‘냉연급 열연’의 시험생산에도 성공했다. 철강재는 두께가 얇을수록 불량률이 높아져 극박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CEM은 연속생산기술로 극박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강도 또한 기존 열연강판보다 우수하다. 연속생산으로 철질이 균일하다. 조명종 포스코 CEM기술지원PJT팀 수석연구원은 “기존 시설에선 두꺼운 슬래브를 압연기에 넣을 때마다 강판의 시작과 끝부분은 균질하게 압연 되지 않아 불량이 날 수밖에 없었다”며 “CEM은 슬래브와 완성품이 한 덩이로 이어져 있어 불량률이 낮고 질이 좋다. 껍질이 없고 흰 부분만 있는 식빵을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열연 공정을 거친 열연강판들의 모습. 열연강판은 검은색을 띤다.

기존 열연강판은 두께 1.2mm 기준으로 1GPa(1만기압) 이상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CEM에서 생산되는 강판은 같은 두께에서 1.5GPa 이상을 견딜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초고장력강(AHSS·Advanced High Strength Steels)은 건축자재와 차량 범퍼 및 필러(차체를 지탱하는 지주) 등에 쓰인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AHSS 수요는 2015년 1200만톤에서 2020년 3700만톤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980MPa(㎠당 10㎏의 하중을 견디는 강도) 이상을 견디는 ‘기가 스틸’의 비중은 같은 기간 37%에서 69%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CEM은 열연공정임에도 냉연으로만 가능하던 기가 스틸급 강제를 양산할 수 있어 부가가치가 높다. 포스코의 ‘라이벌’들이 CEM을 탐내는 이유다.

◆ 연주와 압연 통합한 CEM공정, 1mm 두께 ‘냉연급 열연’ 생산하는 ‘비밀기지’

포스코는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돼 있는 광양제철소의 사진촬영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CEM공장의 경우 ‘비밀기지’로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최희선 CEM공장장은 “포스코만의 최신기술이기 때문에 보안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며 “현재도 신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슬래브 주조를 위해 부어지는 쇳물의 모습.

일반적인 슬래브 주조(연주) 속도는 분당 2m 정도로 압연과정보다 느리다. 그동안은 압연기 1대에 투입할 슬래브를 제조하기 위해 연주기 3대가 필요했다. 하나의 연주기와 압연기를 직결하기 위해선 기존 3배인 분당 6m 이상의 고속 슬래브 주조기술이 필요했다. 조 수석연구원은 “CEM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고속주조”라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 최대 분당 8m까지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CEM 공정에서 생산하는 슬래브의 두께는 80mm~90mm다. 230mm~250mm인 기존 슬래브보다 한층 얇다. 이렇게 만들어진 슬래브는 1차로 조압연 설비에서 3단계 롤을 통과하며 10mm~17mm 두께로 밀려 나온다.

압연기의 양옆에선 윤활과 냉각을 위해 쓰인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조압연기를 통과한 쇠는 이전 단계보다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최 공장장은 “단위구간당 분당 속도가 6.5m이고 슬래브 두께가 기존 슬래브의 30~40% 수준으로 얇아져 강재가 더 빠르게 이동한다"고 말했다.

CEM 생산설비의 5단 압연기.

조압연를 통과한 쇠의 온도는 1000도가량으로 떨어진다. 본격적으로 더 얇게 가공하기 위해선 1150도 이상으로 다시 가열해야 한다. CEM 공정은 이를 위해 전기유도가열 장치를 사용한다. 짧은 공정 안에서 급속도로 재가열하기 위해서다.

마무리 압연단계에선 5단계의 롤을 거친다. 구매자마다 원하는 두께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는 단계다. CEM 공정은 슬래브 주조부터 최종 생산물까지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져 있어 생산 도중에 압연기 설정을 바꿔 두께를 달리해야 한다. 조명종 수석연구원은 “제철소에선 생산 도중 변경사항이 있을 때 사고확률이 급증한다”며 “이를 조정해 연속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CEM공정의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주문사항에 맞게 압연 된 강판이 냉각 단계를 거치고 있다.

목표한 두께에 맞게 얇아진 강판은 냉각 단계를 거친다. 커튼처럼 물이 떨어지며 완성된 열연강판을 식힌다. 이 과정을 지나면 강판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아 잘라낸다.

새까만 강판이 돌돌 말려 완성된 코일은 개당 20톤~23톤. 길이는 1.6km 수준이다. 3m 앞으로 다가서자 사우나에 온 듯 열기가 느껴졌고 코일 위로는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완성된 열연코일 온도는 550도에 이른다. 최 공장장은 “급속 냉각하면 강판이 딱딱해진다"며 “3~4일간 상온에서 식혀야 한다”고 했다.

◆ 고효율 CEM 공정으로 ‘제품’ 넘어 ‘기술’ 판매 나선다

포스코는 2009년 CEM을 상용화하기 시작해 2013년부터 현재와 같은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갖췄다. 최 공장장은 “처음 생산을 시작할 땐 시스템이 불안정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며 “시행착오 끝에 손 하나 대지 않아도 문제없는 ‘노터치’ 공정이 됐다”고 웃었다.

조 수석연구원은 “슬라브 60매 분량의 강판을 연속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나 노하우가 쌓여 실 가동에선 98매 분량까지 투입이 가능했다”며 “부산공항에서 광양제철소 사이의 거리인 총 138km의 코일을 연속생산할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 CEM 운전실.

CEM은 현재 연간 200만톤의 열연극박재를 생산할 수 있다. 1.6mm 미만 두께의 극박재 생산 비율은 2011년 9%에서 2015년엔 33%, 올해는 52%로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1.2mm 미만 초극박재 생산 비율을 7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기존 열연공장에 비해 운영비·투자비·면적이 적게 드는 것도 CEM의 기술수출 가능성을 밝게 한다. 최 공장장은 “작은 면적으로도 생산 설비를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이 CEM의 강점”이라며 “내륙에 설비를 들여놓기 쉬워 해외 기술판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포스코가 CEM 기술을 수출하는 중국 충칭철강은 내륙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