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인 종로는 대한민국 근대 역사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일제 강점기란 치욕의 역사가 가장 많이 서린 곳이자, 조국 해방 독립의 외침이 거세게 일어난 곳도 종로 거리였다.
종각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서울YMCA(기독교청년회관) 회관은 격동의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과 해방 독립의 과정을 한 자리에서 내려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1908년 지어진 서울YMCA 회관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한 본거지였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화재로 소실되는 역사를 함께 한 곳으로, 1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서울YMCA는 1903년 황성기독교청회로 창립됐다. 창립 초기 독립협회의 뒤를 이은 민족 운동체로서 을사늑약반대, 고종양위반대, 개화자강운동 등을 펼쳤다. 일제침략시기에는 2.8독립선언, 3.1독립만세운동의 근원지였고, 물산장려운동, 농촌운동 등을 통해 전국민 계몽운동을 펼쳤다.
YMCA는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됐지만 초종교적 단체를 지향한다. 종교에 상관없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다. 운영비는 전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다.
◆ 3·1운동의 거점으로
서울YMCA 창립 후 회원 수가 263명이 되자 회관이 필요했고, 1908년 서울YMCA 건물이 지어졌다.
1907년 11월 7일 고종황제는 당시 11살이었던 왕세자 영친왕을 정초식(定礎式)에 보냈고 영친왕은 ‘일천구백칠년(一千九百七年)’이란 글을 머릿돌에 썼다. 고종은 당시 1만원의 하사금과 은으로 만든 삽 두 자루도 하사했다.
서울YMCA 회관은 1908년 12월 3일 개관했다. 당시 서울YMCA 회관을 두고 제임스 게일 서울YMCA 초대 회장은 “진고개의 천주 교단(명동 성당)과 덕수궁을 빼놓으면 YMCA회관은 서울에서 가장 훌륭하고 출중한 건물”이라고 말했다.
서울YMCA가 회원 모집에 열을 올리며 1916년에는 회원수가 924명으로 늘어났다. 1916년에는 체육관이 개관했다.
서울YMCA 회관은 3·1운동 때 학생YMCA가 중심이 된 학생단 독립운동이 주요 거점이었다. 신간회 창립대회를 비롯해 각종 민족운동 집회가 개최된 곳이다.
학생단 독립운동은 1919년 1월 27일 중앙YMCA 간사 박희도가 회원모집을 명목으로 대관원모임을 소집한 데서 비롯됐다. 이날 모임에서 서울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들 사이에 독립운동에 관한 의견이 교환됐고, 박희도가 근무하던 서울YMCA 회관은 학생단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됐다.
◆ 한국전쟁 상처 딛고 다시 지어
1950년 9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은 서울YMCA 건물을 불태웠다. 당시 건물은 3층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약 2000㎡ 규모였다. 서울YMCA는 1952년 2월 5일 임시 건물을 짓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YMCA(The Smallest YMCA in the world)’라는 간판을 달았다. 그리고 1958년 서울YMCA는 전쟁으로 파괴된 YMCA 회관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을 겪었고, 건축공사는 1961년 6월 20일에 시작돼 1967년 4월 15일 완공됐다.
현재 서울YMCA 건물은 지하 1층~지상 8층으로 대지면적 3114㎡에 연면적 1만3668㎡다.
신축 회관은 한국 최초의 실내수영장을 품게 됐다. 또 서울YMCA는 이때부터 호텔 사업도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건물 자료도 많이 소실돼 현재까지도 복구 중이다. 아직도 시민의 제보를 받고 있다.
서울YMCA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김정수는 1963년 준공된 장충체육관, 1969년 지어진 국회의사당 등을 지은 유명 건축가다.
서울YMCA 건물은 196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커튼 월이 돋보이며, 단순한 외관에 알루미늄과 청색 타일을 전면에 장식했다.
YMCA빌딩은 크게 직육면체 모양의 건물이다.
이 건물 뒤쪽으로 수영장과 강당, 유도장, 헬스장 등 체육 시설이 있는 공간이 뒤로 붙어있는 모양이다. 내부도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과 체육시설이 있는 공간이 연결돼 있다.
◆ 조오련, 김두한이 오고간 다양한 체육시설
서울YMCA 건물에는 YMCA 사무실과 체육관, 강당 등 서울YMCA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을 비롯해 식당, 소매점, 학원, 병원 등도 있다. 서울YMCA의 사무실은 한곳에 모여있지 않아 1층에서 층별 안내 정보를 잘 확인해야 한다.
건물 뒷편으로는 서울YMCA 별관이 있다. 이 곳은 전부 서울YMCA의 업무 공간으로만 쓰인다.
서울YMCA 사무실은 본건물 1·2·5·7층에 있다. 체육관 건물에는 수영장과 종합 체육관, 유도장, 헬스장이 있다. 서울YMCA 회관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건물 안에도 유서 깊은 곳이 많다.
체육관 건물 지하 1층~지상 2층에는 국내 최초로 지어진 실내 수영장이 있다.
그 시기에는 정식대회 규격을 갖춘 수영장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고(故) 조오련 선수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을 했다. 요즘은 워낙 크고 좋은 수영장이 많아서 특별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담해 보인다.
체육관 건물 3층 종합 체육관에서는 배구, 풋살(실내 축구), 배드맨턴, 농구 등을 할 수 있다. 직장인농구대회가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올해로 28번째인 대회 결승전이 지난달 20일에 열렸다.
강당은 그리 넓지 않지만 아치형 천장 때문인지 답답하지 않고 큰 느낌이 든다. 당시만 해도 아치형 천장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같은 층에 있는 유도장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무도 교육이 이뤄졌던 장소다. 서울YMCA 관계자에 따르면 김두한 등 당시 유명한 ‘주먹’들이 이곳에서 훈련했다고 한다.
실내 강당은 두 개가 있는데, 본건물 2층에 있는 대강당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모든 교육이 이뤄졌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서울YMCA의 모든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최대 250명이 들어갈 수 있다.
같은 층에 있는 소강당은 친교실로 불리는데, 최대 6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맨 꼭대기인 8층에는 서울YMCA가 운영하는 호텔도 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건물 6·7·8층이 서울YMCA 관광호텔이었으나 현재는 8층만 호텔이다. 총 30실 규모의 작은 호텔이다.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위치가 좋아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다.
해외 YMCA 회원들도 미리 알아보고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성수기 기준 예약률은 70% 정도로 크게 붐비지 않는다.
김원호 서울YMCA 관광호텔 지배인은 “서울YMCA 관광호텔은 6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전통있는 숙소로 위치가 좋아 단골 고객이 많다”며 “종로 보신각을 볼 수 있는 방이 2개 있는데 연말에 가족과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서울YMCA 관계자는 “3·1운동과 한국전쟁을 겪은 서울YMCA 회관은 한때는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다”며 “100년 넘게 서울 한복판을 지키고 있는 뜻깊은 건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