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지원금', 2013년 114억원에서 올해 521억원으로 대폭 증가
2014년 166억원 불용, 2015년 144억 불용...올해도 대규모 불용 우려
A씨는 수도권 한 미군부대에서 30년 가까이 기술직으로 일하다 지난 2014년 60세가 돼 정년을 맞았다. 그는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으로 미군부대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지만, 급여가 대폭 줄어드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서 10개 스텝(step)으로 분류된 호봉체계에서 등급이 최상위 단계에서 3단계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칫 가계에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 A씨는 근처 지역고용센터를 찾아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신청했다. 정부가 A씨에게 직접 제공하는 월 50만원 가까운 지원금은 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임금피크제란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그 이후로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와 짝을 이뤄, 고용을 연장하면서 연령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완충적 대안”이라고 장려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은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을 이용해 장년에 이른 임금피크제 대상 근로자들에게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소득에 준하는 액수를 직접 지원해주는 돈이다. 최초 지급시점으로부터 최대 5년간(2016년 이후 신청자는 최대 3년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 예산은 2012년 103억원, 2013년 114억원, 2014년 291억원, 2015년 320억원, 2016년 521억원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 대기업과 공공기관만 이용한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
문제는 임금피크제 지원금 제도의 활용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14년 예산으로 291억6600만원이 책정됐지만, 이중 125억9357만원만 쓰이고 나머지 약 166억원 가량은 불용처리됐다.
지원금 수령자도 특정 사업장에 집중됐다. 고용노동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4년 임금피크제 지원현황'에 따르면, 전체 지원금 수령자 2712명 중 1142명이 미8군, 미공군경리처, 주한미군제175경리단, 주한미군교역처 등에 소속된 미군부대 한국인 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은 지원금 실집행액 126억중 57억312만원을 받았다.
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은 2000년대 초부터 독자적으로 정년연장 제도를 모색하다 정부의 임금피크제를 찾아 2006년부터 활용해왔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이나 연합토지관리계획(Land Partnership Plan) 등으로 기능 통폐합 등으로 인한 감원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대한 자구책으로,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발굴한 수요자들은 아니었다. 당시 노동부는 ”임금피크제 지원금은 정년에 미달한 직원들이 일찍 퇴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업으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의 사례와는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주한미군과의 협의 후 입장이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수령한 사람 중 미군부대 한국인 근로자를 제외한 나머지 1570명도 대부분 대기업 및 공공기관에 편중돼 있었다. 지원규모가 큰 기업별 지원인원과 지원금액을 보면, 우리은행 82명 3억6591만원, 한국전력(본부 및 지역본부) 66명 1억7697만원, 엘지전자 58명 4억9011만원, 국군복지단 및 육군복지지원대대 등 군 소속 근로자 56명 2억1937만원, 신용보증기금 48명 2억7621만원, 동부익스프레스 42명1억1512만원, 국민은행 32명 1억7697만원 등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이 300인 미만 사업장보다 먼저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 대상이었던 점이 중요한 이유지만, 일각에서는 ”여력 있는 대기업을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임금피크제 지원금 사업 집행 실적이 부실한 원인은 고용노동부가 현실과 무관하게 사업목표를 과다하게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업장에서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를 해야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와 관련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노사간 이견 등으로 실제 산업현장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이 미흡해 지원금 집행실적이 부진했다”며 ”근로자는 60세 정년제가 법제화된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정부가 임금피크제 지원금(그림에서 dehg)을 지원하더라도 임금이 감소(그림 bced)하는 것으로 인식하므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 2015년 예산 144억 불용됐는데 2016년 예산은 오히려 201억 늘어
임금피크제 지원금 활용율이 떨어지자, 정부는 2015년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올해부터 지원금 지급 요건이 완화됐고 한 사람이 한 해동안 받을 수 있는 최대 지원금 규모도 늘어났다. 지원금 제도 홍보도 강화됐다. 희망하는 사업장은 노사발전재단의 ‘내일희망일터 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무료 컨설팅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2015년에도 임금피크제 지원금 사업 예산 320억원의 중 약 176억원만 집행되고 약 144억원은 불용됐다. 2016년 집행 전망도 밝지 않다. 2016년 예산 자체가 지난해 비해 201억 가까이 늘어난 521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특히 세부사업 중 2015년에 비해 총 136억원이 늘어난 148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임금피크제 지원금' 사업의 실적이 우려된다. 근로시간단축형 임금피크제 지원 사업은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90~300명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집행 실적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해 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를 통해 "(지원금 사업대상) 50세 이상의 연령층은 자녀의 대학교육 및 결혼 등으로 지출수요가 커서 소득감소가 수반되는 근로시간 단축형 제도를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나치게 사업 목표치와 예산을 늘려잡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2017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첨부된 고용노동부 성과계획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지원금 수령자는 2013년 2367명, 2014년 2712명, 2015년 3258명, 2016년 3900명(잠정치)으로 매년 400~500명 수준으로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2017년에는 1400명 넘게 늘려잡아 5355명이라는 과도한 목표를 세웠다.
정부 스스로도 이 문서에서 “2017년 회계연도의 경우 60세 이상 정년법이 전(全)사업장에 적용됨으로써 임금피크제 현장도입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인원의 큰 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2016년 예상지원인원 3900명에 의욕치 1455명을 더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시행령을 개정해서 지원금 지급 요건을 완화했고, 지난해부터 컨설팅 지원 사업도 하다보니까 중소기업도 지원금을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