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는 지난해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있는 30대, 40대 젊은 경제학자들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했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2016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30대, 40대 한국인 경제학자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미경제학회(KAEA) 전현직 임원진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국제원조 안정성, 비교우위 가져…韓, 미래 보고 대외경제협력 늘려야"
"인구증가, 저소득국가에 집중…친빈곤적 성장으로 돌파해야"

"이윤 추구가 우선인 기업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빈곤 퇴치에 기여할 수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12.7%인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절대 빈곤층으로 이들 개개인의 구매력은 보잘것 없지만 전체로 계산하면 엄청난 시장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충분한 이윤을 남기고도 빈곤층에게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의 대외 원조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은 소규모다. 한국이 원조의 안정성에 집중한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차별화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이제는 한국도 미래를 보고 대외 경제 협력에 우선순위를 더 두도록 해야 한다."

김남석(45) 유엔(UN) 경제사회국 경제담당관(Economic Affairs Officer)은 조선비즈와의 두 차례에 걸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담당관은 미시로 거시를 분석해 내는 전문가다. 미시데이터를 이용해 개별 가계나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경제 전체의 빈곤율과 실업률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내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파악한다. 미시 데이터로 빈곤, 인간 개발, 환경 정책을 연구했고 지금은 주로 최빈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협력, 수출 증대, 분쟁, 빈곤 등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유엔에 둥지를 틀기 전에는 세계은행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담당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2001~2003년에는 미국 연방통계청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90학번)와 동 대학원 석사 졸업 후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때 전공은 경제사(史), 박사 전공은 미시경제학의 경제사다. 지금 유엔에서 하는 일은 개발경제학이다. 다소 엉뚱한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경제연구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생각(전망,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사 연구와 경험이 기본이 되면 사고를 넓게 가지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박사논문의 주 내용도 비슷하다. 미시 데이터를 분석해 거시정책의 함의를 이끌어 내는 게 골자다. 이런 연구방향 때문에 박사학위 중 미국 연방 통계청에서 연구원(researcher)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기업별 미시데이터를 갖고 개별 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경제 전체의 일자리 창출과 소멸(job creation and destruction)의 패턴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다음은 김 담당관과의 일문일답.

◆ "이코노미스트가 다루는 숫자 뒤에 사람들 있어"

- 미국 연방통계청과 세계은행 등을 거치면서 외국에서 생활하고 근무하는 데 어려웠던 부분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구자로서 가능한 철저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 결과물을 내도록 노력하지만 학계가 아닌 필드(field, 현장)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로서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 결과물을 공식문서로 유엔 회의에 제출할 때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면 결국 알맹이가 없는 보고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또 다른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나요.

"능력개발 프로그램(capacity development program)을 수행하러 개발도상국에 가서 연구하고 해당 국가 정부 관료들과 향후 계획을 협의하고 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약속도 이행되지 않는 걸 보면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제행위는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고, 그 희소한 자원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 바로 한정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발경제에는 아쉽게도 정답이 부록으로 수록돼 있는 교과서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이 정답을 풀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그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 분쟁, 재해를 겪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나침반이 없어도 비슷한 방향이라도 잡아 일단 길을 떠나야 합니다."

- 한국에는 유엔 등 국제기구 근무나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싶어하는 후학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한 조언을 해주시죠.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 그런지 한국인 직원들이 많아진 것 같아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아주 젊은 직원들이 엔트리 레벨(entry level, 입문 단계)로 들어오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찍부터 국제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장점입니다. 다만 조직 내에서 자신만의 스페셜리티(speciality, 전문성)을 만들기 힘들다는 건 단점입니다."

-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제기구가 생긴 이유가 해당 전문분야의 업무를 하기 위함이고, 해당 직원은 당연히 어느 분야이든 전문가여야 합니다. 전문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유엔에 근무하게 되면 해당분야의 업무를 계속하게 되므로 전문지식과 경험이 더 쌓이지만, 그런 전문성 없이 시작했을 때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아는 사람)가 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꼭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유엔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충분한 경험을 쌓고 국제기구에 취업하는 것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데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 실제 유엔에 취업하려면 어떤 노하우나 전문성이 필요한가요?

"유엔 채용공고를 자세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엔트리 레벨 채용 공고에는 이 부서는 뭐하는 곳이고 무슨 일을 할 사람을 뽑으니 이런 스페셜리티(전문성)가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명문대를 나와야 된다거나 학점 얼마 이상이나 봉사활동 경력, 유엔에 열정이 있는지 그런 건 공고에 없습니다.

공석이 된 자리에 대한 채용 공고를 하나 내면 최소 몇 백명에서 천 명 가까이 지원서를 냅니다. 이걸 다 읽다보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이력서를 학력, 학점, 열정 이런 내용으로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채용 공고에 어떤 일을 해본 사람을 뽑는다고 써 있으면 '내가 그 일을 해봤다'는 말이 이력서 제일 윗 줄에 있어야 인터뷰에 뽑힐 수 있습니다. 노동경제학이나 게임이론에서 일자리매칭 이론(job matching theory) 같은 것을 지원자들이 공부해 보면 채용시장의 정보교환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코노미스트로 성장하기 위한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이코노미스트, 특히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경제학자가 (그리고 이를 지망하는 후학들이) 꼭 마음에 담아 두었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Faces behind the figures(수치 뒤에 사람들이 있다).' 석사 학위 지도교수였던 양동휴 교수님께서 저에게 종종 상기해주신 것은 우리가 다루는 숫자들은 그냥 수학, 물리학 숫자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어 아동 사망률(child mortality) 수치는 그냥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5년도 못 살고 죽은 아이들의 숫자입니다. 이 숫자의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연구를 할 때 더 집중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도 더 책임감 있게 하겠지요. 그런데 경제학 연구를 계속 하다보면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기구나 필드에서 일하는 것이 제 경우에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연구를 위해 최빈국 시골에 가서 농부, 어부들과 얘기하면 책이나 논문, 보고서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현실에 놀라고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런 국제적인 현실에도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 "포괄적 성장, 민간 부문의 국제발전에 또 다른 추진력"

- 2007년 11월 발표한 'Are Markets Inclusive for the Poor?' 논문에서 가난한 사람이 시장에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를 분석하며 '포괄적 성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셨습니다. 9개 나라를 실증 분석하며 빈자(貧者)들을 위한 경제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셨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0년에 제정된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를 추진하는 동안 여러 문제점과 보완책이 논의됐는데,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고 개발목표를 달성하려면 공공부문의 노력 이외에도 다른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그 다른 추진력의 하나가 바로 민간부문의 국제발전 공헌입니다."

- 포괄적 성장은 정확히 어떤 개념인가요.

"포괄적 성장은 민간부문의 잠재적인 공헌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이윤추구가 우선인 기업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빈곤퇴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사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회적기업의 개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이윤추구까지 하면서 사회에도 공헌하는 좀 더 지속가능한 민관(民官)협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가능한가요.

"2012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12.7%, 즉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절대 빈곤층입니다. 이들 개개인의 구매력은 보잘 것 없지만 전체로 계산하면 엄청난 시장입니다.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충분히 이윤을 남기고도 빈곤층에게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게 포괄적 성장의 개념입니다."

- 빈곤층을 소비자로 본다는 게 낯선 접근입니다.

"빈곤 정책은 주로 공공 정책이지만 성과가 부족하고 더디기 때문에 민간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포괄적 성장의 성공사례는 아주 많지만 대부분이 소규모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마우리타니아의 국가 빈곤율은 42%입니다. 도시에 사는 노동자는 물론 사막의 유목민들도 대부분 빈곤층입니다.

여기에 낙타 치즈를 생산하는 기업이 생겨났습니다. 유목민에게서 낙타의 젖을 구매함으로써 공급자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낙타 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도시 빈곤층에게 질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는 걸을 모델로 하는 기업이 생겨난 것이지요. 이 모델은 이윤을 창출하는 동시에 빈곤층에게 소득증대는 물론 이들을 소비자로 포함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성공사례를 알리고, 어떤 경우에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분석하는 연구의 하나로 시작한 것이 'market heat map'입니다."

- 'market heat map'이 뭔가요. 개념 설명 부탁드립니다.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시장정보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고안해낸 툴이 마켓 히트맵입니다. 히트맵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 예를 들어 물, 전력, 전화, 금융 서비스, 노동 등에 빈곤층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지도 위에 보여줌으로써 이들 시장이 얼마나 '핫'(hot) 하고 '콜드'(cold)한지 보여줍니다. 아직 콜드하다면 그 성장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도 생각해 보도록 해줍니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사는 빈곤층이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지도에 표시하면 지역간 격차, 더불어 빈곤층과 비(非)빈곤층의 격차가 어느 지역에 집중돼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시장 구조에 대한 데이터를 적용하면 현재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소비자로 포함시키면 어느 정도까지 이윤이 가능할지도 추산해 볼 수 있습니다."

-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마켓 히트맵은 어떤 분야가 가능성이 있는지를 한 눈에 보여줌으로써 포괄적 성장이 가능하고 특히 민간부문이 이윤창출도 가능하다는 걸 시사합니다. 유엔개발계획에서 후속연구를 국가별로 지속했고 구체적인 사업들도 많이 시작됐습니다. 2030년 지속가능성장 아젠다와 발맞춰 이런 노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이게 한국에서도 적용가능할까요. 만든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한국에서도 적용가능합니다. 한국은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 빈곤은 거의 없지만 상대적 빈곤이 많고 취약 계층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노년층, 이민자 등에게 어떤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는지, 안 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공공 복지정책의 부담을 줄이고 또 민간차원에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 구체적인 논리 구조와 실행방법이 궁금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이는데,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마우리타니아의 낙타 치즈 기업 뿐 아니라 사례는 많습니다. 과테말라와 멕시코에서 시작한 '아만코'(Amanco)라는 회사는 빈곤한 농부들에게 물 수송 공급(water conveyance supply)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관개(灌漑) 솔루션(irrigation solution)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이마저도 살 수 없는 농부들에게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소액대출사업)을 제공해 농부들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중국의 '후아타이'(Huatai)라는 신문제지업체는 기업이 나무를 관리하지 않고 지역 농부들에게 관리법을 전수해서 지역 소득증대, 환경보호는 물론 공급자를 확대시켜 원재료 가격안정을 달성하면서 기업규모를 확장시켰습니다. 필리핀의 '코코테크'(CocoTech)는 코코넛 껍질을 이용한 친환경 섬유 의류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수익의 대부분이 소규모 지역 빈곤층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모델입니다."

- 선의가 바탕이 되지 않는 이윤 창출이라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 모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모델임을 여러 사례에서 이미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스케일업(scale up, 실험실에서 성공한 프로세스를 경제적으로 성립하도록 그 규모를 확대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수익모델로 삼아 뛰어들 것 같은데 아직 이런 사례가 드문 이유도 분명히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성공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연구한 바로는 몇 가지 제약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먼저 시장정보가 부족합니다. 이런 포괄적 성장에 관심 있는 기업들도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상품과 서비스가 기회가 있을 지 미리 충분히 알지 못하면 리스크가 큽니다. 이런 정보를 확보하려면 상당한 조사와 연구에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인력을 이렇게 생소한 분야의 시장조사에 투입하기가 여러운 게 현실입니다."

- 다른 문제는 뭔가요.

두 번째 문제는 정부의 규제입니다. 새로운 사업이나 새로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려면 기본 규제와 충돌하거나 규정이 아예 없어 허가가 안 나오기도 합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정부의 부패도 제약이 됩니다. 교통과 전력 등 물리적 인프라(physical infrastructure) 문제도 있습니다. 지식과 기술 부족도 문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금융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 말씀하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저는 '정치경제학이 아닌 그냥 경제학은 없다'는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경제라는 것이 원래부터 정치, 사회와 연관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지금 우리가 관찰하는 현실의 경제적인 자원 배분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 시민의 성숙성 등 모든 요인들의 결과입니다."

◆ "韓, 원조 안정성 집중하면 차별화된 우위 가질 수 있어

- 한국이 해외 원조에 있어 안정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하셨습니다.

"한국이 원조의 안정성에 집중하는 것이 다른 원조 공여국과 비교해서 차별화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원조 공여국들은 제각기 다른 원조 모델과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또 모든 원조 공유국들은 원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한국과 비교해서 훨씬 많은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해외 원조가 적은 편인가요.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순 공적원조는 20억달러가 조금 안 되는데 국내총생산(GDP) 경제규모가 비슷한 캐나다와 호주의 원조액은 우리의 두 배가 훨씬 넘습니다. 경제규모가 작은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도 한국보다 아주 많은 원조를 합니다. 한국의 대외원조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소규모 원조 공여국입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단기간에 대외 원조를 늘리기 어렵다면 원조 수원국이 필요로 하는 때에 필요로 하는 곳에 원조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불황기에도 안정적으로 (원조국이 필요로 하는) 사회 부문에 지원을 한다면, 같은 조건에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를 넉넉하게 규정하고 실행하면 불경기에 실업자들이 늘어 실업보험 신청이 많아집니다. 당연히 자동적으로 사회부문 지출이 늘게 됩니다. 이런 정책을 자동적 안정화 정책(automatic stabilizer)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불경기시 사회부문의 지출 감소는 단기적으로 예산을 재분배할 수 있는 이득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보건 악화, 실업에 따른 기술 사장 등의 부정적 영향이 있으므로 경기순환에 따른 단기적 대응을 억제하고 장기적이고 시스템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자체적으로 이런 경기 대응정책의 수립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외부 원조에 많은 부분을 기대는 저소득 국가에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소득 국가에 사회부문 원조를 경기변동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지원해주면 원조수원국 입장에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을 가장 필요할 때 채워주는 바람직한 원조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 또 다른 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앞서 언급한대로 해외 원조에 있어 한국은 우선순위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오픈 이코노미(open economy, 개방경제)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성장한 나라입니다.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아직 교류가 미비한 최빈국(Least Developed Countries), 군소도서개발국(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 해안과 접하지 않은 나라(land locked countries) 등을 비롯한 여러 개발도상국과 전방위적으로 경제협력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국제협력은 단순히 원조를 주거나 받는 개념을 넘어서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부문에서 통합되는 글로벌 시대에서의 협력모델로 변화했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미래를 보고 대외경제협력에 우선순위를 더 두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하지만 경제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과 관료들을 설득하는 건 어려운 문제처럼 보입니다.

"정치인, 관료들을 설득하면 될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이 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가 현재 우리의 대외경제협력에 우선순위를 어느 정도까지 높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를 뽑은 국민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는 결국 사회전체 구성원의 의견이 모여진 것이지 어느 한 두 사람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한꺼번에 인식이 바뀌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최빈국의 빈곤층 아이들보다는 당장 우리 아이들의 복지가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지만, 저소득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경제, 정치, 사회 구조는 엄청난 속도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구조는 그렇게 빨리 바뀌지는 못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대외경제협력에 상당한 우선순위를 두는 나라들은 아주 천천히 성장했고, 글로벌 경제를 대하는 자세로 천천히 습득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속도로 선진국 그룹으로 진입했지만 의식까지도 그렇게 빨리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 더 깊어지고 경제협력에 대한 관점 등 우선순위를 점차 재구성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인데, 우리나라 국민 특성상 이 시간도 별로 많이 안 걸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