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앞으로도 은행 업무를 봐야 하지만, 꼭 은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World needs banking, but it does not need banks).”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20년 전 쯤부터 미래에는 은행이 사라질 것이라며 이렇게 예언해왔다.

그러나 빌 게이츠 예언은 아직 국내에선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우버(Uber), 구글(Google), 에어비앤비(Airbnb) 등 신흥 IT기업의 출현으로 상당수 업종이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과 달리, 금융권은 아직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무풍(無風)지대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예금·대출·송금·환전 등 은행 업무를 핀테크 기업이 아닌 은행에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수십년간 은행에 의존해온 상당수 고령층 고객들은 기존 서비스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주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핀테크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로 인해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박한 영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편리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전통적 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골리앗’ 은행들을 뛰어넘는 서비스를 출시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들의 새로운 가치는 은행 등 기존 금융사 업무의 틀을 깨는 데서 나온다. 조선비즈가 발빠르게 변신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해 봤다.

① 불편했던 은행 서비스를 기회로

IT·핀테크 기업들이 사업 모델을 짜는 방정식 중 하나는 기존엔 불편했던 은행 업무를 훨씬 간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중 대표적인 분야가 간편·송금 서비스다. 공인인증서에 의존하는 시중은행의 기존 인터넷뱅킹 앱에 불만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카카오(다음카카오)가 지난해 10월 소액 송금 앱(애플리케이션)인 ‘뱅크월렛카카오’를 출시한 것을 필두로 네이버, NHN엔터테인먼트, 삼성, LG, 롯데, 신세계 등 많은 기업이 간편 송금·결제 서비스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간편 송금·결제 분야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스타트업은 비바리퍼블리카였다. 이 회사가 지난해 초 출시한 간편 송금 앱인 '토스'<사진>는 스마트폰으로 전화번호와 송금할 금액, 암호 등 세 가지만 입력하면 10초 안에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송금할 수 있다. 앱 출시 초기에는 국내 4대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해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었으나, 두 달 전 국민은행과 제휴를 계기로 서비스 범위를 대폭 넓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모바일 결제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의 벤처기업 ‘루프페이’를 인수해 속전속결로 ‘삼성페이’를 출시했다. 삼성페이는 식당·편의점·옷가게 등에 있는 ‘긁는 방식’의 카드 단말기에서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대금을 치를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8월 서비스를 시작한 삼성페이는 출시 4개월 만에 누적 결제 건수 1000만건, 누적 결제액 2500억원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교통카드 기능도 만들었다.

후발 주자인 네이버가 지난 6월 출시한 ‘네이버페이’는 출시 초기에는 경쟁사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웹툰, 영화, 뮤직 등 네이버 콘텐츠와의 연계 영업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기준 ‘네이버페이’의 월 이용자는 325만명, 월 거래액은 2000억원에 달했다.

바이오(생체) 인증이 공인 인증서를 대체할 본인 인증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홍채, 지문, 손바닥 정맥 등 신체 정보를 바탕으로 한 보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도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중 홍채 보안 기술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이리언스는 지난달 기업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홍채 인증 서비스를 선보였다. 카드나 통장 없이도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눈을 대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리언스는 이러한 특허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② 금융사 손길 미치지 못하는 틈새시장 공략

일부 P2P 대출 기업들은 기존 은행권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특정 고객층을 공략해 수익 기반을 쌓고 있다. P2P 대출이란 인터넷·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개인 대 개인 간 대출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P2P 대출 분야의 선두 주자인 8퍼센트는 지난달 말 창업 1년 1개월 만에 투자 금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지만, 상환 의지가 강한 대출자를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으로 골라내 연 10%대의 중금리 대출을 해주는 게 특징이다. 지난달까지 총 4400여명의 투자자가 대출자로 나섰으며,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521건의 대출에 투자해 평균 8.3%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연 10%대 부동산 대출 시장을 공략 중인 테라펀딩은 P2P 대출 방식으로 올 들어 30여억원의 대출을 중개했다. 건물을 담보로 진행 중인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아 시행사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주는 틈새시장이 주요 공략처다.

피플펀드는 은행과 제휴를 통해 신용 대출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다. 대출자의 신용과 리스크를 자체적으로 산정해 투자자를 모으고, 투자금을 담보로 전북은행이 예금담보대출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다른 P2P대출 업체들과 달리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상생 모델을 모색 중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메이크스타는 웹드라마나 영화 등 한류상품에 특화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말 일부 크라우드펀딩업체가 중개한 투자처의 연체율이 높아졌음에도 대표가 잠적해 ‘먹튀’ 논란이 불거졌던 가운데, 특정 고객층을 타겟으로 한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③ 금융사-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 해소

기존 금융사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줄여 큰 호응을 얻은 기업도 있다.

2013년 설립된 뱅크 샐러드(사진)는 적립금이나 프로모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신용·체크카드를 골라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2600종에 달하는 국내 신용카드의 데이터를 모두 취합해 고객의 구매 결제 내역을 자동으로 분석해 맞춤형 신용카드를 추천해준다.

지난 2006년 1월 설립된 더치트는 금융 사기범의 계좌번호와 이름, 전화번호 등 신상 정보를 공유하는 기업이다. 금융 사기 거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관련 정보를 입력한다. 10년 넘게 정보를 쌓아오면서 현재 17만건이 넘는 데이터베이스(DB)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는 사기범의 계좌로 돈을 보내려 할 때 미리 ‘사기 피해 계좌’라는 경고 문구를 볼 수 있도록 우리·기업은행과 제휴를 맺었고, 사기범의 번호로 전화가 오면 ‘사기 피해 의심번호’라는 메시지를 받아 볼 수 있도록 SK텔레콤 등 통신사와 제휴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