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14일 별세함에 따라 애정의 반세기를 보낸 삼성과 CJ의 화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은 병석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큰 형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맹희 전 회장을 부를 때 별명처럼 사용된 수식어가 ‘비운의 삼성가 장남’이었을 정도다.

이맹희 전 회장은 동생인 이건희 회장과의 ‘애증 관계’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이어졌다. 이맹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현 회장도 이건희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사이가 틀어진 건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맹희 전 회장은 애초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1968년 삼성의 모태기업인 제일제당 대표이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부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등 그룹의 주요 직위를 맡았다. 사실상 삼성 총수로서 역할을 했다.

반면, 이병철 회장은 삼남 이건희 회장에게는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와세다대 재학 시절부터 매스컴 경영을 권유받았고 1966년 첫 직장도 동양방송을 택했다. 이때만 해도 둘은 특별한 애증 없이 서로에게 맡겨진 길을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사이는 틀어졌다. 한국비료가 58톤의 OSTA(사카린 원료) 밀수하다 부산세관에 적발됐고, 삼성은 당시 돈으로 2400만원의 벌금을 냈다. 하지만 언론은 재벌의 사카린 밀수와 도덕성 문제를 크게 보도했고, 결국 이병철 회장이 책임을 지고 재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비료 지분 51%도 국가에 헌납했다.

이후 이맹희 전 회장은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삼성 총수 대행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장자 상속의 원칙에 따라 삼성의 경영권을 받았던 이맹희 전 회장의 경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맹희 전 회장이 삼성가와 틀어지게 된 연유도 결국 한국비료 사건 때문이었다. 한비 사건 2년 후 청와대 투서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맹희 전 회장이 투서의 주범으로 몰려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맹희씨가 한비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에 투서를 했다고 믿었고 그 이후 이맹희 전 회장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십여 년간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1987년에는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직후 삼성은 급속도로 승계가 이뤄졌고 이맹희 전 회장은 안국화재보험 지분을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전자·제당·물산 등의 삼성그룹 주요 지분을 받았다.

별문제 없이 승계작업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맹희씨와 이건희 회장의 상속분쟁은 2013년 재발했다. 이병철 회장이 남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차남 창희씨 측도 이 전 부회장 쪽에 가세했다. 삼성가 상속소송은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1·2심에서 맹희씨 측의 완패로 끝났고 맹희씨는 고심 끝에 상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맹희 전 회장은 소송이 끝날 무렵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맹희 전 회장은 법정에 “지금 제가 가야 하는 길은 건희와 화해하는 일입니다. 급속하게 성장하는 특별한 타입의 저의 암 씨앗은 지금도 혈액을 타고 전이할 곳을 찾습니다. 저와 건희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이제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어 서로 화합하며 아버지 생전의 우애 깊었던 가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제출했다.

동생과 공개적으로 화해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동생과 화해를 선언한 셈이다.

이재현 회장도 이건희 회장과의 사이가 틀어졌지만 최근 봉합 분위기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아버지인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과 법적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양 그룹 간 미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겉으로 보기에도 사이가 급격히 악화됐다. 또 이병철 회장 선영 출입문 사용 문제 등을 놓고도 삼성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CJ그룹과 삼성그룹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등은 2014년 8월 범 삼성가 구성원들이 맹희씨의 아들인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재계에는 두 그룹 간 화해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상속 재산 다툼도 이미 끝났고, 그 중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난 만큼 CJ와 삼성이 더는 싸움을 할 이유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