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면서 과일의 ‘제철’이 사라졌다. 과거 대표적 여름 과일이던 참외가 4월, 수박이 5월부터 쏟아져 나온다. 늦봄에서 초여름 시고 단맛을 뽐내던 딸기는 이제 흰눈이 내리는 12월부터 본격출하하는 과일이다. 예전 딸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5월이면 딸기는 끝물이다. 하우스 재배가 늘고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따뜻해지며 출하 산지가 넓어지는 과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일 재배와 유통에서 사계절이나 제철은 이제 의미 없는 단어로 전락했다.
요즘 수박은 연중 수확 가능한 ‘사계절’ 과일로 변모하고 있다. 통상 7~8월이 제철이었던 수박은 주요 수박 산지에서 하우스 재배가 늘며 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과일로 자리잡았다.
참외 제철은 4월, 수박은 5월부터
본격적인 햇수박 출하 시기도 크게 앞당겨졌다. 최근에는 5월부터 본격 출하하고 있다. 통상 과일은 추운 가을, 겨울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나오다가 봄~여름으로 넘어가며 출하지역이 점점 중부 지방으로 올라온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 함안과 창원 등이 주요 산지인 수박은 봄~여름으로 넘어가며 전라남도 나주, 무안, 충청북도 음성, 경기도 논산 등으로 출하 지역이 넓어진다.
실제 국내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의 수박 물동량은 점점 연중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가락시장에 수박이 가장 많이 들어올때는 하루에 1000톤(t) 이상이 들어온다. 이 같은 시기가 2010년만해도 7월 초중순에 집중적으로 몰렸는데, 현재는 6월초부터 7월까지로 기간이 늘어났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유통본부 물류개선팀의 변성교 대리는 “수많은 농수산물 중에서 특히 과일의 제철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수박의 경우 이제는 봄~가을까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외도 마찬가지다. 6~8월이 제철이었던 참외는 요즘 4월부터 출하하고 있다. 여름 과일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참외다. 경상북도 성주 참외가 4월에 처음 출하하고 나서 대구 근교, 중부권으로 출하지역이 올라온다. 2010년 가락시장의 참외 물동량은 5월 말~6월 말까지 하루 300톤 수준으로 연중 고점을 찍었다. 이처럼 참외 물동량이 연중 최대치를 찍은 시기가 작년에는 5월 초부터 7월 말까지로 늘어났다.
딸기는 12월 과일? 예전 제철 시작이던 5월이면 끝물
5~6월이 제철인 봄 과일 딸기도 비슷한 경우다. 요즘에는 12월부터 4월까지 딸기가 난다. 예전 제철의 시작이라던 5월이면 딸기는 끝물이다. 출하하는 농가도 거의 사라지고 소비자들도 딸기를 찾지 않는다. 경상남도 산청, 진주 등에서 많이 나는 딸기는 전라도 담양, 익산, 경기도 논산, 양평 등으로 출하지역이 넓어지고 있다. 봄 과일인 매실과 여름 과일 포도도 비슷한 상황이다.
점점 과일 제철이 사라지는 이유는 과일 농가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주요 과일 산지에서는 제철보다 좀더 일찍 과일을 출하하면 성수기때보다 좀더 비싼값에 과일을 팔 수 있다. 통상 과일 제철에는 과일 공급이 늘어나며 값이 싸진다. 과일 산지는 점점 넓어지며 농가들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통정보부의 이정석 대리는 “본격 제철이 오기 전에 먼저 과일을 수확해 내놓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는 싼값에 과일을 먹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수요와도 맞닿아 있어 대형마트에서도 점점 일찍 과일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마트에서는 올해 수박을 지난 3월 5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딸기는 작년 11월부터 판매했다. 이마트에서 작년 3~5월 팔린 참외 매출은 원래 제철이었던 6~8월 참외 매출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딸기 역시 작년 겨울 매출이 봄 매출보다 2배 높았다. 9~12월이 제철인 귤은 여름을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 3계절에 걸쳐 매출이 고르게 분포했다.
신현우 이마트 과일 선임바이어는 “영농 기술이 발달하면서 3월에 수박과 참외, 10월 하우스 귤, 11월 딸기와 같은 싸고 맛있는 과일이 나온다”면서 “매장에서 ‘한파가 끝나자마다 여름을 앞둔 봄이 왔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계절 마케팅도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