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도피생활 중이던 장진호(63·사진) 전 진로그룹 회장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장 전 회장은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장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캄보디아, 중국 등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진호 전 회장은 주식회사 진로 창업주인 고(故) 장학엽 회장의 차남으로, 1982년 진로에 입사했다. 이후 사촌형, 이복형과의 분쟁을 거친 다음 진로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1988년에는 진로를 그룹 형태로 개편하고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진로그룹의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했던 1988년 당시 진로그룹의 계열사는 9개였으나 1996년에는 24개로 늘어났다. 그룹 총매출은 1987년 41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진로그룹은 1997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창업 73년만에 부도를 맞았다. 결국 진로는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5년 10월 하이트맥주에 매각됐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이 과정에서 56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

검찰에서 풀려난 장 전 회장은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02년에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을 취득하는 등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행 직후 또 다른 비자금 문제로 검찰의 수배를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ABA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이 설립한 은행으로,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진로은행’ 또는 ‘한국은행’으로 불렸다. 이 은행은 2003년 진로그룹 법정관리 당시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이 외에도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단란주점 사업도 손을 댔다. 또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 현지에서도 소주사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모씨와 함께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도 프로젝트’도 진행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장 전 회장이 세금 미납액과 금융기관 체납액, 벌금 등 수백억원에 달하는 빚을 가지고도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장녀 훈마나와 거래를 맺은 덕으로 추정된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막강한 권력을 권력을 갖고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최우선 로비대상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훈센 총리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며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장진호 전 회장은 ABA은행 매각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는 2010년 중국으로 건너가 도피 생활을 이어 나갔다.

장진호 전 회장은 2012년 2월경에 베이징에 머물며 중국인 사장을 앞세운 ‘이다양광’이라는 게임업체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게임업체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를 했으며, 현지 법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2013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984년부터 10여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500억~600억원가량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84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향후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 진로그룹의 자금을 김 전 대통령에게 제공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