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대부분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최근의 저물가 현상이 계속 이어진다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8일 조선비즈(chosunbiz.com)가 경제·금융 전문가 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문가 19명 모두 “현재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교과서적인 의미의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 물가 하락이 광범위한 품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근 상황은 디스인플레이션, 즉 ‘저물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저물가가 이어지며 디플레이션으로 상황이 악화될 위험성은 크다고 진단했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 경제가 이미 디플레이션 초입(初入)에 있다고 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유가가 반등하며 공급측 저물가 요인이 제거되면 우리 물가가 다시 2%대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우리 경제가 사전적(辭典的) 의미의 디플레이션은 아니지만, 과거 일본 사례 보면 1990년대 초반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고 이때부터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가 악화돼 1998~1999년 실제로 물가가 하락했다”고 밝혔다. 또 “지금 우리나라의 저물가는 공급측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빠르게 고령화되며 가계소비가 줄어드는 등 수요 요인도 물가를 낮추는 요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락 한화증권 연구원 역시 “디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하락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악화, 경기침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디스인플레이션(저물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면서도 “경기가 둔화되고 자산시장이 부진한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하락하고 있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점검할 시기인 것은 맞다”고 지적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교과서적인 의미가 아니라 저물가, 또는 물가 하락으로 인한 부작용이 실물경기에 나타나는지로 디플레이션을 판단한다면 우리 경제는 이미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라고 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성급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낮아졌지만 근원인플레이션은 상승하고 있고, 최근 급락한 국제 유가도 더 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반기에는 우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를 향해 반등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농산물·석유류를 제외한 1월 근원인플레이션율은 2.4%로 전월(1.6%)보다 크게 상승했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우리 저물가는 국제 유가 등 비용 측면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편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올해 담뱃값 인상 요인을 제외하면 2월 물가는 오히려 하락한 것인데, 이는 국제 유가 급락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해도 저물가 심리가 장기간 이어지면 디플레이션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저물가 상황이 이어져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