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합니다’ 지시를 받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입사 시험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가는 신입사원처럼 말입니다. 해외펜팔을 시작하는 여고생이 빈 편지지를 바라보는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좀 더 로맨틱할까요. 하여튼 전 데드라인을 30분 앞둔 지금까지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도대체 뭘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데 전 원고지 6매짜리 기자수첩 하나도 십여차례를 썼다 지우며 완성하는 졸필(拙筆)입니다.

일단 기자 김명지를 소개하는 자리이니 먼저 ‘기자가 왜 됐나?’는 질문부터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별로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유명인 뒤나 캐고, 아픈 것을 들추어 내는 직업이 뭐 그리 좋다고 되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줬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당시 어울리던 무리 가운데 기자를 하는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합니다. 대학원 과외활동 지도 교수님의 “너는 기자하면 잘 하겠다”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은 묻고 따지기 좋아하는 제 성격을 에둘러 표현하신 건데, 김칫국부터 마신거죠. 교수님이 기자의 역할을 설명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이 어떻고 저떻고 하시는데, 그때부터 기자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기자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몇차례 낙방 끝에 파이낸셜 뉴스에 합격해 금융부 기자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거기서 부동산부와 산업부 등을 거쳤고, 조선비즈로 옮긴 후에도 조선일보 프리미엄뉴스부에 파견을 나가 있던 1년 6개월을 제외하고는 부동산-금융-유통 등 생활경제 분야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제정책부 국회팀에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현실 정치는 책상머리 공부와는 천양지차입니다. 기자로서 제가 지금까지 다뤘던 분야와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요즘 저는 하루 하루가 배움의 연속입니다. 아침마다 기대에 부풀어 출근을 합니다. “오늘은 언제 어떻게 총(취재지시를 뜻하는 은어)를 맞아 전소(全燒. 남김없이 다 타버림)할까?”

어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손가락만한 멸치들이 상어나 고래 등 포식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바닷 속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꼭 멸치같다”는 제 말에 누군가가 “그럼 우린 멸치대장이 되자”고 응답했습니다. 그 때는 그 말의 깊이를 몰랐는데, 지금은 좀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