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되면 비운(悲運)의 우리 나무가 생각납니다. 지난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TV에 출연해 언급한 구상나무가 그것입니다.

한라산 윗세오름의 구상나무

190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식물 채집 활동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의 포리 신부와 타케 신부는 한라산에서 채집한 나무 중 하나를 미국의 하버드대 식물분류학자 윌슨에게 보냅니다. 그 나무에 흥미를 느낀 윌슨은 1917년에 일본의 나카이 박사의 안내를 받아 직접 제주도로 와서 채집해 아놀드 수목원으로 가져갑니다. 그 나무는 전 세계 통틀어 국내에서 밖에 발견되지 않는 한국 특산식물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식물 연구에 몰두해 있던 나카이 박사는 윌슨보다 먼저 1913년에 그 나무를 채집했지만, 차이점을 밝혀내지 못해 신종 등록의 선취권을 윌슨에게 내주고 맙니다. 그 나무가 바로 구상나무로, 구상나무의 명명자는 윌슨입니다.

해외로 유출된 구상나무는 품종 개량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거듭났습니다. 우리 고유의 나무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용료를 내고 구상나무 품종을 역수입하고 있습니다. 미스김 라일락과 비슷한 경우죠. 빼앗긴 나무에도 봄은 올까요? 크리스마스가 뭔지, 유전자원의 소중함이 뭔지 깨닫기도 전에 빼앗긴 우리의 나무입니다.

구상나무는 여타의 침엽수들과 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차이점을 알아두면 아주 쉽습니다. 일단 소나무처럼 열매가 아래를 향해 달리면 ‘Pinus속’ 식물, 구상나무처럼 열매가 위를 향해 달리면 ‘Abies속’ 식물로 구별합니다.

위를 향해 달리는 구상나무 열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Abies속 식물, 즉 열매가 위를 향해 달리는 나무는 구상나무 외에 전나무와 분비나무가 있습니다. 전나무는 잎끝이 뾰족한 데 비해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잎끝의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점이 다릅니다.

끝이 뾰족한 전나무의 잎
끝이 둘로 갈라진 구상나무의 잎(좌)과 분비나무의 잎(우)

자, 이제 그럼 구상나무와 분비나무의 차이점만 남았습니다. 두 나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열매에 있습니다. 열매의 솔방울 조각 끝에 바늘 같은 돌기가 있는데, 이 돌기가 아래로 젖혀지면 구상나무, 젖혀지지 않고 옆으로 곧게 벋으면 분비나무로 구별합니다. 참 쉽죠?

돌기가 아래로 젖혀진 구상나무의 열매(좌)와 돌기가 옆으로 곧게 벋은 분비나무의 열매(우)

그것을 윌슨이 발견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쉽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발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차이점에 입각하여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의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의 고지대에 구상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즉, 전북 덕유산 이남의 높은 산에서만 자란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솔방울조각의 돌기가 아래로 젖혀지는 정도가 사실 좀 애매합니다. 시기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나무끼리도 약간씩 달라서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특히 설악산에 자생하는 분비나무의 경우에는 구상나무처럼 돌기가 아래로 젖혀지는 것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사실 그보다는 어느 정도부터 아래로 젖혀진 것으로 보느냐 하는 기준을 정할 수가 없는 문제점이 더 큽니다.

한 장소에서 두 나무가 혼생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만약 정밀한 연구 결과 두 나무의 차이점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구상나무는 분비나무 쪽으로 합쳐질 운명에 놓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한국특산식물을 하나 잃게 됩니다.

수목원에 심어진 것 말고, 한라산이나 덕유산에서 실물로 만날 수 있는 구상나무의 기상은 남다릅니다.

한라산 백록담의 구상나무

구상나무의 암꽃이삭은 녹색부터 붉은색, 갈색, 흑자색 등등 매우 다양해서 찾아보는 기쁨을 줍니다.

구상나무의 녹색, 붉은색, 흑자색, 갈색 암꽃이삭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러던 것이 여름에는 모두 흑자색으로 변하고 가을에는 갈색으로 익는 통일성을 보여줍니다. 제주도에서 성게를 ‘쿠살’이라고 하는데, ‘잎이 성게 같은 나무’라는 뜻에서 ‘쿠살낭’이라고 하던 것이 변해 구상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구상나무를 보면 잎보다 열매(또는 암꽃이삭)가 더 성게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잎은 끝이 둘로 갈라져 무디고, 열매는 바늘처럼 뾰족한 돌기가 촘촘하니까요. 그러니 구상나무는 잎보다 열매가 성게 같은 나무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몇몇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구상나무 숲이 현저히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 간다고 염려합니다. 실제로 가보면 허옇게 말라 죽어가는 구상나무 고사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밀 조사 결과 아직도 구상나무 숲은 건재하고, 파괴되어 가는 속도가 그리 염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같은 것을 놓고 연구자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니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