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의 메카 디트로이트가 파산한 '진짜' 이유는?

입력 2013.07.19 17:19 | 수정 2013.07.21 14:15

지난 1월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인 '2013북미국제오토쇼'가 열린 미국 디트로이트시(市). 기자가 머문 숙소 직원은 "이동할 때는 반드시 콜택시를 이용하고, 낮에도 가급적 밖을 돌아다니지 말라"고 충고했다. 숙소가 있는 곳은 모터쇼가 열리는 '코보(COBO)센터'에서 약 20여㎞ 떨어진 곳이었다. 숙소 직원은 "디트로이트가 경찰 인력이 부족해 모터쇼 기간에 코보센터에 시 경찰인력이 집중된다"며 "이 때문에 코보센터 외의 지역은 현재 치안 부재(不在) 상태"라고 말했다.

한때 북미 최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도시 재정이 파탄나기 시작했다. 시 재정이 구멍나자 2006년 공무원 수를 1만8000명에서 1만2000명으로 줄였으며, 가장 먼저 경찰인력의 30%를 삭감해버렸다. 시내 가로등 중 40%는 고장난 채 방치돼 있다. 디트로이트가 '자동차의 천국'에서 '범죄의 천국'으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한 이유다. 어려움을 겪던 디트로이트가 18일(현지시각) 끝내 파산 신청을 냈다.

◆ 인구 200만→70만, 예견된 파산
미국 미시간 주(州) 디트로이트. /조선일보DB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디트로이트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1903년 포드 창립자인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면서 자동차 산업이 태동했다. 이후 GM·크라이슬러까지 소위 미국 '빅3' 자동차 업체가 모두 이 곳에 터를 잡았고, 디트로이트는 일약 '북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떠올랐다. 5대호 중심부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수륙 교통이 발달돼 있고, 기계·조선·정유 등 연관산업과의 높은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1980년대 이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디트로이트의 파산은 예견된 일이었다. 시를 먹여 살리던 자동차 산업이 점차 쇠락하면서 1950년대 200만명 수준이던 인구는 현재 70만명으로 줄었다. 디트로이트 가정의 평균 수입은 미국 평균 4만9000달러의 절반을 약간 넘는 2만8000달러에 불과하다. 2011년을 기준으로 빈곤층 비율은 3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의 평균 주택가격은 7만1천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인 13만7천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가 줄고, 가계 소득 역시 형편 없다 보니 시 재정은 바닥나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미시간 주(州) 정부의 도움으로 채권을 발행했고, 차입을 늘리면서 연명해 왔으나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는 예상이 많았다.

이번 디트로이트시의 파산은 미국 지방자치단체 파산 중 최대 규모다. 앞으로 디트로이트시는 185억달러, 우리돈 20조7662억원을 갚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시 세금의 원천이었던 자동차 회사들이 대거 빠져나간 상황에서 단순히 구조조정만으로 빚을 모두 갚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디트로이트에 전시된 주먹을 꽉 쥔 팔 모양의 조각상이 뒤에 보이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GM 본사 건물을 향해 마치 강펀치를 날리는 듯하다. /조선일보DB



◆ 일본차에 안방 내주면서 위기 시작

디트로이트의 위기는 먼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이후 일본 차 점유율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고전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베스트셀링카 10대 중 4대가 일본차일 정도로 일본 브랜드들이 약진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내놨지만, 이 조치들은 오히려 미국 차 회사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던 중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자동차 수요가 줄자 디트로이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 보호 신청을 내면서 대규모 감원을 했다. 포드는 파산 보호 신청은 면했지만 9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등 불황을 완전히 비껴가지 못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이들 회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였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 미국 자동차 시장 호황에 힘입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문제는 디트로이트에 이 과실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현지 생산을 늘리는 추세에 맞게 미국 회사들도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린데다, 미국 내에서도 디트로이트 생산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포드의 경우 전 세계 생산시설 79곳 중 디트로이트 인근에 있는 시설은 13곳 정도다. 한때 디트로이트 직원만 10만명이 넘었지만 지금 디트로이트 인근에서 일하는 인원은 2만명이 채 안 된다. GM이나 크라이슬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GM은 금융위기 당시 주력 차종을 생산하던 햄트래믹 공장에서 수백명을 감원했다. 하지만 사정이 나아진 지금 햄트래믹 공장은 이전만한 활기를 찾지 못했다. 이 곳에 전기차 생산 시설을 들여놨지만 아직 판매가 신통치 않다.


포드가 1903년에 생산한 첫 양산 자동차 '모델A'. 최고 속도 시속 48km까지 낼 수 있다. /안석현 기자

◆ 강성 노조로 엑소더스 가속화
론 게텔핑거 전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이 2008년 12월 3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UAW 수뇌부 긴급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갖 고 있는 모습. 이날 UAW는 부도 위기에 내몰 린 미국 자동차 업계를 돕는 차원에서 임금 삭감과 복지혜택 축소 등을 받아들이 기로 결정했다. /조선일보DB

이렇게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디트로이트를 떠나는 배경에는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있다. UAW는 사측을 압박, 퇴직자를 위한 막대한 의료비 지원 협약을 이끌어 내기로 유명하다. GM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전까지 자동차 1대를 팔 때 마다 1500달러를 퇴직자를 위한 의료비 지원에 사용하는 구조였다. 의료비 지원 대상에는 GM의 자회사였다가 독립한 자동차 부품회사 델파이 직원도 포함됐다.

전 세계 업체들이 단 1달러라도 싸게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원가 혁신에 나서는 마당에 1대당 1500달러를 적립해야 하는 GM으로서는 일본·유럽차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GM이 1985년부터 15년간 노조원과 퇴직자들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지원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은 1030억달러, 우리돈 115조원에 달한다. 이는 GM의 제품·품질·신기술 투자를 지연시키고 결과적으로 차 경쟁력 저하를 야기했다.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려는 다른 주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도 자동차 회사들이 디트로이트를 떠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앨러배마 주 정부는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공장 부지 주변의 도로를 확장하고 도로명을 '현대 블러버드'로 변경했다. 고용 창출을 위한 채용광고비 지원, 교육훈련 연수원인 'HMMA 트레이닝 센터' 제공 등도 이어졌다. 조지아 주 정부는 기아차 조지아공장 설립 당시 공장주변의 고속도로에서 공장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나들목을 개통했다. 공장 정문 앞을 통과하는 '기아 파크웨이', 공장 인근의 연수원으로 연결되는 '기아 블러버드'도 만들었고, 공장 부지 및 인프라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각종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 역시 다른 주를 선택하고 있다.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X시리즈'를 생산한다. 벤츠도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앨라배마에 공장을 설립했다. 혼다는 앨라배마·인디애나·오하이오에 각각 공장을 갖고 있으며, 닛산은 미시시피와 테네시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다. 도요타는 인디애나·켄터키·미시시피·텍사스에 각각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기아차의 조지아 생산공장 설립을 환영한다는 지역 주민의 플랜카드. /조선일보DB
김철묵 자동차산업연구소 부장은 "새로 생기는 자동차 공장의 대부분은 디트로이트를 벗어나 남쪽 도시로 진출하는 게 대세"라며 "남쪽 주 정부들이 일거리와 세수 창출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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