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한적한 놀이터에 앉아 맥도널드 감자튀김을 먹으려던 아이 곁으로 동네 못된 형들이 몰려든다. 손에 든 감자튀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 아이는 울상이다. 그런 어느 날, 못된 형들이 감자튀김 먹던 아이 곁을 그냥 지나친다. 어찌 된 일일까? 아이 얼굴을 클로즈업했던 카메라가 손을 비추는 순간, 답이 나온다. 맥도널드 감자튀김을 커다란 버거킹 봉지 안에 숨긴 것이다. 그만큼 버거킹 인기가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다. 제목부터 "McDonalds 'is' better than Burger king"(맥도널드는 진짜로 버거킹보다 낫다)이다.

이번엔 버거킹 차례. 버거킹 계산대에 누군가 등을 돌리고 섰는데, 흰색·빨간색 줄무늬 양말을 신은 다리가 보인다. 누가 봐도 눈에 익은 맥도널드 캐릭터. 경쟁사 캐릭터가 몰래 와서 먹을 정도로 자기네 햄버거가 더 맛있다는 광고다.

비교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설득 수단이다. “ 펩시가더맛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코카콜라 배달원이 자사 콜라캔에 몰래 펩시콜라를 채워넣거나(왼쪽), LG전자 신형 휴대폰이 업계 최고 인기폰 제조사(애플)를 박살 내는 모습(가운데) 등이 대표적인 비교광고다. 쌍용자동차는 국내 1·2위 업체의 경쟁 차종 기능을 직접 비교, 코란도C의 비교우위를 알렸다(오른쪽).

경쟁사끼리 날 선 공방을 주고받는 이런 직격 비교광고가 이제 한국에도 뿌리내리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아니 어떻게 저렇게 노골적으로 상대를 비꼴 수가…"라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던 소비자들도 명쾌하게 경쟁 제품 장단점을 파악하도록 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현대차·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그룹 내부거래 비율을 줄이려고 대규모 광고 물량을 외부에 개방하면서 경쟁 기업끼리 서로 광고를 해주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도 비교광고 시대 본격 개막

최근 국내 통신 3사(社)의 치열한 회원 뺏기 경쟁 덕분에 비교광고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속도·요금제·부가서비스 등 경쟁 요소마다 통신사끼리 공격을 주고받는 모양새다. LG유플러스는 '전화가 오면 데이터망이 3G로 바뀌는 LTE가 있다' 편을 통해 자사 LTE 스마트폰은 전화가 와도 LTE가 유지되지만, 일부 경쟁사 스마트폰에선 3G로 통신망이 바뀐다는 점을 부각했다.

또 가장 먼저 통신사 제한 없이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한발 늦었던 업계 1위 SKT를 공격했다. 누가 봐도 SKT로 보이는 매장 앞에 개그맨 신동엽이 '같은 통신사끼리만 음성 무제한' 광고판을 붙이자, 옆집에서 야구선수 류현진이 '통신사 제한 없이 무제한' 광고판을 붙이는 식이다. HS애드 관계자는 "점유율이 가장 낮아 단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LG유플러스로서는 다소 자극적으로 보이는 직격 비교광고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후발주자의 날 선 공격이 눈에 띈다. 쌍용자동차는 2011년 신형 코란도C를 내놓으면서, 현대·기아차를 물고 늘어졌다. '스포티한 R씨, 섹시한 ix씨! SUV 뒷자리가 안 젖혀진다는 게 말이 돼? 코란도C는 되는데…'라는 광고 문구를 넣었다. 여기서 R은 기아차 스포티지R, ix는 현대차 투싼ix를 지칭한다. 뒷좌석이 젖혀지지 않는 두 차량에 비해 코란도C의 공간 활용성이 높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신형 캠리를 국내에 출시하면서 '내비게이션? 옵션, 후방카메라? 옵션, 경추보호시트? 옵션…. 옵션은 차 값을 올리는 수단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담은 광고를 내보냈다. 자사 차에는 이런 기능이 모두 들어 있는데도 가격을 종전보다 낮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국산차에 대해 가진 최대 불만사항을 효과적으로 건드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요타 관계자는 "도요타가 글로벌 1위 기업이지만 한국에선 철저히 약자"라며 "소비자의 구매 후보군(群)에 진입하고 인상을 남기기 위해선 강자를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많은 후발업체가 도요타와 비슷한 비교광고에 뛰어들었다.

약자에게 더 이로운 전략

미국은 비교광고의 천국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1972년 비교광고를 전격 허용한 이래, 글로벌 기업들의 비교광고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다. '백년전쟁'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코카콜라펩시의 밟고 밟히는 광고가 대표적이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있는 코카콜라를 먹기 위해 한 어린이가 펩시 캔을 밟고 올라서는가 하면, 자판기 버튼 꼭대기(펩시)에 손이 닿지 않자, 생돈을 들여 코카콜라를 일단 뽑은 뒤 이 캔을 밟고 올라서서 펩시를 뽑아먹고 코카콜라는 버린다는 내용도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비교광고를 하려면 자사의 비교우위뿐만 아니라 약점까지 담아야 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비교광고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이 규제가 풀렸다. 덕분에 삼성-LG, 삼성-애플, LG-소니 등 글로벌 전자회사들의 세련된 비교광고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비교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설득의 수단"이라며 "그러나 객관적인 근거 없는 비교, 실증(實證)할 수 없는 비교는 비방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