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호화 결혼식 하고 싶으면 해라. 단, 느그들이 벌어서 해라. 아부지는 그런 돈 안 대준다. 식장에도 안 갈란다. 여자 친구 생기면 미리 말해줘라. 시아부지 안 오는 결혼식 하고 싶거든 호텔에서 식 올리라고."

18대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 정의화(64·새누리당) 의원이 2008년 아들 3형제를 앉혀놓고 억센 부산 사투리로 선포한 말이다.

장남 연학(32)씨는 그해 11월 최대 200명 들어가는 부산 좌천동 김원묵기념봉생병원 강당에서 신부 구연수(32)씨와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정 의원은 "둘째·셋째도 같은 방식으로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본지와 여성가족부가 펼치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에 네 번째 주자로 참여한 것이다.

정의화 의원은 아들 결혼식을 호텔에서 치를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다.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정 의원은 “우리 사회도 이제 돈 있다고 으스대는 단계에서 벗어나 검소하게 품격을 지키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면서 “호화 결혼식에 갈 때마다 ‘저 집 자식이 아무리 똑똑해도 아직 이룬 게 없을 텐데, 이렇게 거창하게 식 올리면 되겠는가’ 싶다”고 했다.

정 의원 부인(59)은 "큰아들 혼사 때 꽃 장식 업체를 따로 부르지 않고 우리끼리 강당에 커튼 달고 카펫 깔았다"면서 "커튼 값·카펫 값에 잔치국수 대접하고 떡 돌리는 비용까지 총 500만원 들었다"고 했다. 커튼과 카펫은 남은 두 아들 결혼시킬 때 다시 쓰려고 보관 중이다.

정 의원은 신경외과 전문의다. 부산대 의대·뉴욕대를 거쳐 1981년부터 30년 넘게 김원묵기념봉생병원을 맡아 동네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키웠다. 그는 19대 국회 재산등록 할 때 140억원을 신고했다. 현역 의원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다. 그래도 일찍부터 세 아들에게 "호화 결혼식 꿈도 꾸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호텔 결혼식 가보면 패션쇼 무대처럼 꾸며놓고 부(富)를 과시하면서 축의금까지 받습니다. 원래 축의금·부의금은 큰일 치르느라 힘들다고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보태주는 겁니다. 아들들에게 '부자일수록 사양할 줄 알아야 한다' '대소사를 간소하게 치러야 욕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아들 결혼할 때 축의금을 사양했다. 장인상·장모상·부친상 치를 때도 부의금을 안 받았다. 화환 보내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쳤다. 정 보내겠다고 하면 쌀로 대신 받아 가난한 노인들에게 기부했다.

그는 "요즘 한국 사회에는 큰 모순이 있다"고 했다. 부자(富者)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선 반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깊이 들여다보면, 부를 일군 행위 그 자체에 반감이 있는 게 아닙니다. 부자들이 편법으로 상속하고, 남들은 다 고생하는데 자기 자식만 화려하게 출발하게 하니 박탈감을 느끼는 겁니다."

정 의원은 "나는 우리 집에서 '파쇼'(독재자)"라고 했다. 아버지가 결정하면 가족들은 무조건 따른다는 뜻이다. 장남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차남·삼남은 병원 일을 거들고 있다.

차남 연화(30)씨는 아버지와 꼭 닮은 부산 말투로 "우리 아부지 파쇼 맞는데 마 하시는 말씀이 다 옳습니다" 했다. 그는 공익 판정을 받은 뒤 "현역으로 군대 가라"는 아버지 닦달에 '군대 갔다 건강 해쳐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육군 백마부대에서 복무했다.

"예전 여자 친구에게 '우리 집은 화려한 결혼식 못 하게 한다'고 했더니 싫어하데요. '호텔에서 결혼하는 게 로망이다'하더라고요.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결국 헤어졌습니다. 결혼할 여자 생기면 '호화 결혼식은 돈만 있으면 다 한다. 작은 결혼식은 아무나 못 한다. 작은 결혼식 하려면 돈 말고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이래 설득할라고요."

정 의원의 부인은 최근 자식들에게 "집집마다 예단 때문에 싸운다던데, 우리 집은 그러지 말자"고 했다. 삼남 연석(29)씨는 "작은 결혼식이 우리 집 전통이 되게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