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이 부진한 가장 큰 요인으로 재건축 후 단지를 관통할 예정인 폭 15m 도로가 꼽히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은마아파트 단지 안에 15m 도로를 집어넣었다. 기본계획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초 구상으로 이 기본계획이 바뀌지 않는 한 설계를 변경할 수가 없다.

도로가 생기면 사선제한 때문에 고층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사선제한이란 통풍이나 채광 등을 위해 도로에 접한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도로와 접한 건물은 높게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단지 안에 폭 15m 도로가 생기면 전체 건축물의 높이가 낮아진다. 이정돈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27일 "건축물을 높게 못 지으면 사업 면적과 가구 수가 줄어 조합원 부담이 커지게 된다"며 "도로를 지하로 뚫을 수도 없기 때문에 기본계획을 변경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단지 안에 15m 도로를 넣는 것은 2006년에 결정됐지만, 지난해 7월 정비계획수립업체가 내놓은 조감도에서 처음 공개됐다.

은마 아파트의 재건축 후 예상 조감도.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단지 중앙에 예정된 폭 15m 도로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어 이달 중순 강남구청은 현재 102㎡(30.8평), 112㎡(33.9평)형 4424가구, 14층 높이의 은마아파트를 49㎡(14.8평) 1125가구, 114㎡(34.5평) 2703가구, 135㎡(40.8평) 1770가구 등 최고 49층 높이의 5598가구로 짓는 안을 추진위에 제안했다. 총 5598가구 중 49㎡형 1008가구는 임대주택이다. 강남구청의 제안에는 단지 안에 15m 도로를 넣는 것이 포함돼 있다.


추진위는 강남구청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임대주택을 1000가구 넘게 배정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폭 15m 도로가 포함돼 있는 점이 더 큰 이유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정돈 위원장은 "단지 안에 들어설 폭 15m의 도로가 사업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기본계획을 변경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추진위는 도로를 없애기 위해 기본계획 변경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본계획을 변경하려면 변경안을 서울시에 제출해야 하고, 서울시 심의, 시의회 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야 해 사업기간이 최소한 1년 이상 늦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위는 동시에 기본계획 변경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15m 도로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진행할 계획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연말까지 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마치고 새로운 안을 제시할 계획"이라며 "15m 도로는 서울시가 정한 것이기 때문에 강남구가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500여개의 상가도 재건축의 걸림돌로 꼽힌다. 상가를 아파트와 통합해서 개발할 경우 상가 소유자와 권리금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고, 분리해서 개발할 경우 임대주택을 지을 공간이 줄게 된다. 이정돈 재건축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조만간 15m 도로와 상가 문제 등을 종합해서 두 개의 안을 만든 다음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해 사업 방식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