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의 성공방정식은 시효가 끝났나.

우리가 진단한 바로는 분명하다. 한중일 3국 정부의 산업정책,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경영 전략,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에 대한 투자 동향을 분석해 보면 한국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는 징후가 뚜렷하다.

이런 진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먼저 중국의 부상과 전략 변화 때문이다. 한국이 반도체와 휴대폰, 조선, TV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성공의 비결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선제적 투자전략이었다. 불황기 세계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몰두할 때 한국기업들은 정반대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선발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일본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할 때 우리는 신흥개발국에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대중소비시장(볼륨존·Volume zone)을 공략했다.

그런데 중국이 등장했다. 중국은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의 성공 방식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한국 기업보다 더 빠른 스피드, 더 강력한 선택과 집중, 더 큰 규모의 투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래 산업 분야인 태양광·풍력·전기자동차·의료-바이오·통신장비 분야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우리가 도저히 따르지 못할 수준의 과감한 투자로 한국 기업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마치 개구리가 점프하듯 중간기술과 전통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곧장 첨단기술·첨단산업 분야 개발에 주력하는 '립 프로그(leap frog)식'으로 도약하고 있다. 우리가 추격형 성장을 했다면, 중국은 도약형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아시아 국가들 간의 '안행형(雁行型) 산업발전 모형'도 뒤흔들어 놓는다. 일본이라는 기러기가 가장 선두에서 날고, 그 뒤를 한국과 대만이, 그 뒤를 다시 동남아 국가와 중국이 따라가는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중국은 미래산업 분야에서 한국·대만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뛰어넘어 최선두에서 날아가려 한다.

한국이 머뭇거린 사이… 현대중공업 충북 음성 태양전지 공장에서 한 직원이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태양전지 1위 기업이지만, 중국 태양전지 회사인 선텍의 3분의 1에 불과한 생산 규모를 갖고 있다.

중국의 그런 시도가 가능한 것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풍력·태양광·전기자동차는 아직 성숙한 시장이 아니지만 중국 정부는 관련 투자를 하는 기업과 소비자에 엄청난 보조금을 주면서 아예 시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중국만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경쟁전략을 구사해왔던 일본이 변하고 있다. 아예 노골적으로 '한국 벤치마킹'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우리의 성공 방식 학습에 나설 정도다. 일본 기업들 사이에선 '삼성전자' 배우기가 하나의 흐름이다. 일본 정부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한국이 대통령까지 나선 총력전으로 UAE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하자, 일본 정부는 원전과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민관합동기구를 구성하면서 한국식 인프라 수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인천공항에 아시아는 물론이고 일본의 항공사들까지 몰려들자 일본은 하네다, 나리타공항 개조작업에 나섰다. 심지어 정부 부처인 경제산업성에 '한국실'을 별도로 설치해 한국을 철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달리고 일본 교토시에 위치한 태양전지 생산회사인 교세라 본사. 옥상과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태양전지판은 하루 28㎾의 전기를 생산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가·첨단 제품 중심의 전략에서 벗어나 한국 기업들이 우세를 보이는 아시아 등 중저가 시장으로의 진입을 강화하고 있다. 수익은 크지 않지만 시장이 큰 '볼륨존'을 공략하면서 우리 기업이 누려온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 실장(상무)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동성에 똑똑함(smart)을 더해야 한다. 특히 기술이 관건이다. 우리가 도전해야 할 기술분야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기술, 다양한 이종(異種) 지식의 융합이 필요한 분야일 것이다. 한중일 격전에서 우리가 반드시 확보해야 할 기술 분야가 무엇인지 철저히 분석하고, 그를 위해 정비해야 할 교육시스템과 제도는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이나 성공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묘약이다. 100년 전 한일합방이 될 때 한중일은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봤다. 그것이 지난 100년간 3국의 차이를 가져왔다. 3국이 다시 각축하는 지금, 우리는 앞으로의 100년 승부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