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현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창립 80주년'이란 표현 대신 '개점 80주년'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5월 1일

신세계백화점이 언제 개점(開店)했는지가 왜 문제가 되고 있을까. "80주년은 속된 말로 오버"라는 비아냥이 업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올 초부터 창립 80주년을 강조했다. 음악회에도, 세일에도 80주년이라는 말을 넣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80주년'이 상당히 모호하다. 보통 브랜드든 회사든 학교든 ○○주년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몇 가지 중 한 가지는 들어맞아야 한다. 하나는 그 이름이나 브랜드가 유지되는 것이다.

서울 충무로 신 세계백화점 본 점 신관과 본관 (오른쪽). 본관 은 미쓰코시 경 성지점이었다

A대학교가 학교 이름을 바꾸지 않고 100년이 됐다고 하면,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도 '개교 100주년'이라는 말을 쓴다. 사람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한 사람과 그의 후손이 100년 동안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했다면,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도 '창업 100주년'이라고 말한다.

이 중 신세계가 해당되는 게 있으면 80주년이 맞다. 그런데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 80년 전인 1930년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은 남대문의 현재 신세계 본점 자리에 미쓰코시 경성지점을 열었다.

이보다 앞서 미쓰코시는 1906년부터는 일본인 거주지였던 진고개(충무로 근처)에서 미쓰코시 오복점(포목점)을 운영했었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코시 경성지점 건물은 현재도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으로 쓰이고 있다. 80년이 됐으니 그 자체가 사료(史料)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의 봉마르쉐고 일본 최초의 백화점은 1904년에 세운 동경 미쓰코시백화점이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 어딘가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 포목점도 백화점으로 본다면 미쓰코시다. 현대식 백화점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옛 미도파 백화점 자리에 있던 조지아백화점(1921년 개점)이 있다.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회가 2007년 발간한 '서울의 시장'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서울에는 6개의 백화점이 있었다. 그 중 한국인이 소유한 백화점은 두 개였고 나머지는 일본인의 백화점이었다.

한국인의 화신·동아 백화점은 종로에, 일본인의 백화점은 남대문·충무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제의 미쓰코시 경성지점은 1945년 해방 이후 경영진을 다 바꾼 뒤 동화백화점으로 새로 출발했다.

동화백화점은 정부 소유가 됐다가 6·25전쟁 때는 미군의 PX로 사용되기도 했다. 동화백화점은 1955년 다시 백화점 영업을 시작했다가 1963년 삼성그룹에 의해 인수되면서 신세계백화점으로 바뀌었다.

즉, 현재의 신세계와 '80년 된 백화점'의 연결 고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서 신세계와 관계 없는 일본인의 백화점이 1930년 문을 열었다는 점뿐이다. 신세계도 인정했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창립 80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논리다.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조지아백화점이 바뀐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한 롯데백화점은 올해 89년을 기념해도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신세계는 지금은 '창립'이라는 설명을 굳이 하지 않고, '80'이라는 숫자만 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