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2월, 영국 런던 시내에 도착한 유상호 대우증권 대리(현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손에는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종이에는 아시아 주식매매를 담당하는 영국계 기관투자자들의 이름과 회사, 전화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기관투자자들을 무작정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 'No, thanks.'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다. "바빠 죽겠는데 왜 전화질이냐"는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콧대 높기로 소문난 영국 기관투자자들은 당시 한국 주식브로커들을 'Luncheon voucher'(식권)라고 불렀다. 만나기만 하면 점심이나 먹자며 명함을 건넨다며 한국 브로커들을 깔보던 때였다. 그렇게 무시당하기를 수개월. 어느 날, 브로커들 사이에서 가장 성격이 고약하기로 소문난 영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A씨와의 식사 자리에 운 좋게 끼게 됐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시큰둥하게 밥만 먹던 A씨가 톡 쏘아댔다. "한달 후 왕창 오를 주식 두 개만 찍어봐." 순간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세게 베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삼성전자처럼 장기투자에 적합한 우량주가 아니라, 주가 변동성이 큰 주식 두 개를 찍었다. 정확히 한달 후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찮다는 듯 전화를 끊으려는 그에게 "30초만 달라"고 사정했다. "한달 전 내가 말했던 종목들이 30~40% 올랐다"는 말을 서둘러 했다.
며칠 뒤 제약주(製藥株)가 급등하자 유 대리는 한국 제약주에 대량으로 투자해놓은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10초만 달라"고 했다. "제약주 다 팔아라." 그 한마디만 하고 이번에는 유 대리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오전 상한가를 치던 제약주 주가는 오후부터 빠지기 시작하더니 열흘 연속 하한가를 쳤다. 10여일이 지난 금요일 오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뭐 사면 돼?"(A씨)
그때부터 A씨는 귀찮을 정도로 많은 양의 주문을 주기 시작했다. 1992~1999년 사이 영국계 기관투자자들의 대규모 한국 주식매매 중개를 거의 독차지했던 '전설의 제임스'(Legendary James·유 사장의 영어 이름이 James임)는 그렇게 시작됐다.
◆영국과 중동 투자자 공략
제임스는 단기 성과에 매달리지 않았다. 수개월~수년간 주문을 주지 않는 기관투자자들에게도 끊임없이 한국 투자 정보를 주며 신뢰를 쌓아갔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쿠웨이트 투자청 펀드매니저에게도 주문 한 건 없이도 6년간 공을 들인 끝에 중동 국가와 본격적으로 주식 매매를 체결한 최초의 주식브로커가 됐다.
영국 기관투자자들 사이에 '제임스는 믿을 만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영국 최대 연기금의 펀드매니저도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브로커가 돼 달라고 했다. 한 영국계 펀드매니저는 2주간 휴가를 가면서 브로커인 그에게 삼성전자 주식 매매 전권(全權)을 맡기기도 했다. 주식 주문이 밀려들며 95년에는 하루 전체 주식거래량의 5%를 그의 팀이 다 매매할 정도였다.
◆김남구 부회장과의 만남
제임스는 2002년 동원증권 김남구 부사장(현 한국금융지주 사장 겸 한투증권 부회장)과의 만남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대우증권을 떠나 메리츠증권 상무로 재직하던 2002년 1월, 김남구 부사장이 점심을 제안했다. "동원증권이 앞으로 어떻게 커 나가면 되겠느냐"는 김 부사장의 질문에 그가 이런저런 조언을 하자, "그럼, 와서 직접 해주시죠"라며 그 자리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두 달간의 고민 끝에 동원증권으로 옮기려고 결심했지만, 그를 따르던 지점장과 부서장들이 사무실에 몰려왔다. "절대 나가시면 안 된다"며 사무실 앞에서 진을 쳤다. 그는 김 부사장에게 '약속을 어겨 죄송하다'는 장문의 사과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후임자를 구하지 않고 기다렸다. 거듭된 김 부사장의 요청에 결국 유 사장은 9개월 만인 그해 10월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원증권과 한투증권 합병 이후 2007년 한투증권 CEO 자리에 오른 그는 과거 해외 세일즈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이슬람 등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펴고 있다. 유 사장은 "30대 때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쌓았던 배짱과 용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