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큰 위기라도, 위기가 지나면 주가는 회복된다. 대공황 때도, 블랙먼데이 때도 주가가 결국엔 올랐다. 다만 언제 회복이 시작되고, 회복세가 가파르냐 완만하냐가 문제였을 뿐이다.

과거 있었던 글로벌 경제 위기를 분석해보면 위기 후 주가 회복의 시나리오는 대체로 두 가지 패턴으로 대별된다. 주가가 분지(盆地·밑이 넓은 U자) 모양의 더딘 회복을 보이는 '대공황형(型)'과, 2년 내외의 단기간에 계곡(V자) 모양으로 원상회복하는 'IMF 사태형'이다. 일본의 버블붕괴는 '대공황형'에 가깝고, 미국의 블랙먼데이는 'IMF형'과 비슷했다.

이번 금융위기 때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각국의 정책공조가 기민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글로벌 주가가 몇 년 안에 'IMF형'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강력 대책으로 충격을 완화시키면 주가의 회복이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경우 내년 성장률이 플러스로 전망되는 점도 주가에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파생금융상품 발달로 인한 피해확대 등을 고려할 때 '대공황형'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는 일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대공황형(분지형)

1차 세계대전 이후 실물 경제 침체에도 불구, 상승을 거듭하던 미국의 주가 버블은 1929년 9월을 정점으로 거품이 터졌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루스벨트 정부가 들어선 1933년에 가서야 '뉴딜정책' 등의 적극적 해법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사이 주가는 3년여 동안 90%나 빠졌다. 이후 실물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이전 주가를 회복하는 데에만 무려 25년 2개월이 소요됐다.

당국의 소극적인 부실처리로 불황을 장기화시켰다는 점에서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역시 대공황 때와 닮았다. 일본 주가는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난 후에도 최고점으로 원상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주가 그래프는 'L'자형을 보이고 있다.

◆IMF형(계곡형)

아시아 IMF 사태와 미국의 블랙먼데이는 단기급락 이후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원상태를 회복했다.

1987년 10월 2차 오일쇼크 후 미국의 저금리 상황에서 주식에 거품이 끼며 발생한 블랙먼데이는 불과 2개월도 안 돼서 주가가 1000포인트나 빠졌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신속하게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발 빠른 대처로 위기가 실물경기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아 2년 만에 주가를 전(前) 고점으로 돌려놓았다.

그후 10년 뒤 아시아 외환위기 때 한국 역시 주가가 1년 만에 64%나 폭락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기관 구조조정 및 공적 자금 투입으로 2년 만에 주가는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이번 위기 때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 후 주가 움직임이 대공황이나 일본식 장기침체형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을 보였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최근 금융위기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각국이 공조해 사태에 빨리 대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IMF형'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성진경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전 세계적으로 정책공조와 당국의 강력한 개입이 이뤄지고 있어 대공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내년 상반기엔 세계 경기가 저점(底點)을 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경우 예전보다 강해진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 등도 '분지형' 주가흐름을 막을 요인으로 제기된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전분기 대비 GDP 성장률도 아직 플러스를 보이는 등 국내 실물경제는 아직까지 양호하다"고 밝혔다.

다만 주가가 본격적인 상승세로 돌아서려면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IMF 때 구제금융이 지원된 후 98년 1월 한 달간 주가가 51% 반짝 상승했지만 금융사·기업 부도가 이어지면서 8개월간 주가약세가 지속됐다"며 "이번 금융위기도 비슷하게 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2005년을 제외하고 99년 이후 국내 대출성장률은 매년 경제 성장률보다 높았다"며 "가계 부동산대출을 중심으로 한 대출부실은 또 다른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