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감독당국이 외국계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의 칼을 빼들었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조선업종의 목표주가를 잇달아 내린 게 '대차(貸借)거래'와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대차거래란 주가가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나중에 가격이 하락한 뒤에 싸게 사서 갚는 방법으로 차익을 내는 기관투자가들의 투자기법이다. 예탁결제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대차 거래물량 16억2592만주 중 외국인들의 거래분은 14억8567만주로, 전체 물량의 91.4%를 차지한다. 외국인들이 대부분 거래하는 투자기법인 셈이다.

결국 금융감독당국은 외국계 증권사들이 시가가 떨어져야 이익을 내는 대차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조선업종의 목표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방법으로 시가를 하향조정하려 했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개인 투자자들 중에도 대차거래와 그 대상이 되는 개별 종목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국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들이 비관적(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보는 종목이 어느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한 대차거래는 해당 주식을 되사 갚아야 하는 거래이기에, 대차거래 물량이 큰 종목은 나중에 외국인들의 매수(買收)압력이 커져서 오히려 주가상승의 기회가 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 순매도의 대부분이 대차거래

그렇다면 대차거래가 집중된 종목의 주가는 실제 어떤 움직임을 보였을까? 지난해 대차거래 체결량이 컸던 상위종목들은 하이닉스, 외환은행, 기아차, 우리금융지주 등이었다. 이중 외환은행을 제외한 종목들의 주가가 모두 연중 15~30% 정도 빠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올 1월 외국인 순매도액 8조4300억원 중 대차거래액(추정치 4조9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8%로, 외국인 순매도액의 상당 부분이 대차거래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로 일관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26~27일 양일간 순매수세로 돌아선 이유를 대차거래와 연관시키는 증시 전문가들도 있다. SH자산운용 김해동 주식운용본부장은 "불투명한 글로벌 경제 속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증시에 대한 의견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면서도 "최근 대차거래 잔고물량이 급격히 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일시적인 매수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체 발행주식 가운데 대차거래 비중이 높은 종목을 눈여겨보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외국인들의 우선적인 매수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분석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으로 전체 발행주식에서 대차잔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5% 이상인 주요 종목은 삼성증권(16.6%), 기아차(13.8%), 현대차(12.1%), LG생활건강(12%), 우리투자증권(10.9%), 현대산업개발((10.9%) 등이었다.

◆주가와 연관여부 논란

그러나 대차거래를 주가움직임과 직접 연결 짓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증시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한국 증시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지난 2004년 이후 외국인들의 대차거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증시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새로운 주식거래 방법으로 대차거래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차거래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주식 순매수로 돌아선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김 연구원의 지적이다.


◆ 매수대차(貸借)거래 

주가가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가격에 주식을 사서 되갚는 방법으로 차익을 얻는 거래. 대주제도와 비슷하나, 대주는 주로 증권사가 개인고객을 상대로 하는 반면 대차거래는 대형기관(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또 다른 기관을 상대로 하는 거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