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구 도시 톈진에서 나고 자랐다. 열여덟 살 때까진 고향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다섯 살 무렵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 세계지도에 매혹됐고, 일곱 살 땐 부모님이 사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는 재미에 빠졌다.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처음 타봤다. 이때까진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마흔두 살에 자신이 인류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극지 궤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지난 10여 년간 100조원 규모의 비트코인 채굴로 큰돈을 벌었다는 중국 출신의 몰타 국적자 왕춘(42) 얘기다. 그가 탄 스페이스X 우주선이 지난달 31일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이 우주선에는 왕춘을 비롯해 노르웨이 영화감독 얀니케 미켈센, 독일 로봇공학·극지 연구가 라베아 로게, 호주 모험가 에릭 필립스 등 네 사람이 타고 있다. 민간인이 상업적 용도로 우주 여행을 하는 것은 스페이스X의 2021년 ‘인스피레이션4’와 2024년 ‘폴라리스 돈’ 임무 이후 세 번째다. 비(非)미국인의 민간 우주 비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춘과 동료들은 지구 남극과 북극 상공을 오가는 극지방 궤도를 우주선으로 비행 중이다. 인류 첫 시도다. 이들은 3~5일 동안 인체 변화 등 과학 실험을 수행한다. 지난 1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인체 X선 촬영을 했다. 왕춘은 임무 첫날 소감에 대해 "우주 멀미 때문에 속이 뒤집혀 고생했다"며 "둘째 날 아침부터 멀미가 사라졌고, 창으로 남극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X(옛 트위터)에 남겼다.
이번 우주여행에 드는 모든 비용을 왕춘이 댔다. 스페이스X 측은 정확한 액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우주 전문가들과 현지 매체들은 2억달러(약 2900억원) 이상 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번 임무명 ‘프램(Fram2)’도 물주(物主)인 왕춘이 정했다. 그는 몰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예전 노르웨이 여행을 하다 박물관에서 19~20세기 극지를 돌던 탐사 선박 ‘프램호(號)‘를 인상 깊게 봤다. 우리 우주선도 극지를 도는 만큼 그 배의 이름을 따서 ‘프램2’라고 붙였다”고 했다. 여행에 동행할 이들도 모두 왕춘이 택했다. 그는 기왕이면 극지방을 여행해본 이들과 떠나길 원했고, 노르웨이에서 스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미켈센과 로게, 필립스를 초대했다.
왕춘의 막대한 부(富)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대학을 중퇴했고, 베이징의 한 외국계 프로그래밍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컴퓨터 몇 대만 놓고 채굴을 시작했다. 초반엔 가상 화폐 시장이 폭락해 빈털터리가 될 뻔도 했다. 그러나 이내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자, 왕춘은 바로 아버지에게 4만달러(약 5800만원)를 빌려 2013년 비트코인 채굴업체(F2Pool)를 본격 창업했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비트코인 130만여 개(약 104조원)를 채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손에 쥐자 왕춘은 본격적으로 여행에 빠져들었다. 지금껏 다닌 나라는 128국, 비행기는 1000번 가까이 탔다. 전 세계의 각종 고속열차도 850여 회 타봤다고 했다.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그는 6국 여권을 지니고 다닌다. 너무 여행을 많이 다니는 데다 여권이 여러 개이다 보니 외국 공항에서 구금된 적도 있다. 2023년 8월엔 돈을 주고 몰타 시민권을 구매했다. 왕춘이 이번에 입은 우주복에도 몰타 국기가 붙어 있다. 일각에선 그와 중국과 러시아의 연계 가능성도 의심한다. 북한의 가상 화폐 해커 조직에 비트코인을 송금해줬다는 의혹도 있다.
어찌됐건 왕춘은 이번 우주 여행을 통해 자신이 ‘은하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 듯 하다. 그는 “이번 우주여행은 나의 1000번째 비행이자 은하계를 향한 첫 비행”이라면서 “나는 상업 우주여행의 선구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왕춘의 X 계정엔 그가 지난 2개월 동안 우주로 가기 위해 훈련 받아온 과정이 기록돼 있다. 왕춘은 이번 우주선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아래에 이렇게 썼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살아남는다. 나는 우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