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 온 언어 이해, 도구 제작, 불 만들기를 모두 해낸 ‘수퍼스타 유인원’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 ‘유인원 인지 보존 연구소(Ape Initiative)’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리한 보노보(침팬지속 유인원)로 알려진 칸지(Kanzi)가 지난 18일 45세로 숨졌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칸지는 심장병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다만 사인을 밝힐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23년 7월 미국 아이오와주의 유인원 인지 보존연구소에 있는 보노보 칸지의 모습. 도구 제작과 언어 사용이 가능했던 칸지는 지난 18일 세상을 떠났다.

보노보 수컷인 칸지는 순수 ‘야생동물’은 아니었다. 1980년 10월 28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 국립영장류연구센터에서 태어났다. 이 연구센터는 ‘렉시그램(lexigram)’이라는 그림문자를 유인원에게 가르치는 연구를 했다. 렉시그램은 사물의 이름이나 각종 개념을 네모 칸에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다. 칸지는 다른 가족이 렉시그램을 배우는 것을 어깨너머로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문자를 깨쳤다. 다른 보노보들은 끝내 언어를 터득하지 못했지만, 어린 칸지는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연구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림문자로 3000여 영어 단어를 익혔고, 나중에는 추상적 기호와 상징도 이해했다고 한다.

칸지는 다섯 살 때부터는 조지아주립대 언어연구소에서 자랐다. 연구진은 칸지가 생후 8년 되던 해에 두 살배기 아기와 비교 실험을 했는데, 칸지가 아기보다 뛰어난 언어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사람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단계까지 갔다. 하루는 한 방송 기자가 방문해 “달걀”이라고 말하자, 칸지는 터치 스크린의 달걀 그림을 눌렀다. 또 “엠앤엠(초콜릿 브랜드 이름)”이라고 하자 칸지는 이에 해당하는 그림을 눌렀다. 사람처럼 발음하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유인원 인지 보존 연구소는 “칸지는 영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게 표현했고, 문제 풀기를 좋아했으며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데도 열정적이었다”고 했다.

칸지는 도구도 활용할 줄 알았다. 돌을 깨뜨려 날카로운 부싯돌을 만들고, 그것으로 끈을 잘랐다. 불도 사용했다. 성냥으로 불을 피우고 그 불에 마시멜로를 꿰어 구워 먹었다. 나중엔 비디오 게임도 했다. 아케이드 게임 팩맨과 마인크래프트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칸지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마인크래프트를 하는 영상 조회는 725만회를 넘겼다.

유인원 인지 보존 연구소는 “칸지는 인간과 관계가 가장 밀접한 종(種)이자 친척인 유인원(보노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선물한 존재였다”고 했다. 가장 인간답게 살다 간 유인원을 기리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