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팽창을 가속화하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의 밀도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표준 우주 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약 138억년 전 대폭발(빅뱅)로 탄생한 뒤 끊임없이 팽창해 왔고, 팽창을 이끄는 암흑 에너지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수(常數)로 여겨졌다. 하지만 45억년 전에 비해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10% 약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우주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뒤흔들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우주 이론 바뀌나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성분 중 ‘일반 물질’은 5%에 불과하다. 정체불명의 ‘암흑 물질(dark matter)’과 암흑 에너지가 각각 27%, 68%를 차지한다. 암흑 물질은 질량이 있고 공간을 차지하지만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아 관측할 수 없는 물질이다. 암흑 에너지는 중력과 반대로 물질을 서로 밀어내는 에너지다. 우주의 팽창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표준 우주 모형은 암흑 물질이 빛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이는 ‘차가운’ 상태이고, 암흑 에너지는 상수 값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암흑 에너지가 상수가 아니라 ‘변수(變數)’라는 관측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암흑 에너지 분광 장비(DESI)’ 국제 공동 연구진은 약 1500만개의 은하와 퀘이사(거대 발광체)를 관측한 3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지난 45억년간 약 10% 낮아졌다고 미국물리학회를 통해 밝혔다. DESI는 미국 애리조나 키트피크 천문대에 설치된 망원경이다. 5000개의 작은 광섬유 로봇으로 구성된 분광기가 장착돼 5000개의 천체에서 동시에 빛을 포착할 수 있다. DESI 프로젝트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을 포함한 11국 70개 기관의 연구자 약 90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표준 우주 모형을 수정해야 한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연구진은 DESI 데이터에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초신성, 약한 중력 렌즈 관측 자료 등을 결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암흑 에너지의 밀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모형이 기존 상수 가정보다 관측 결과를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샤피엘루 알만 천문연 박사는 “암흑 에너지가 우주 상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엄청난 발견의 시작을 보고 있다”며 “이 발견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을 바꾸고, 이론 물리의 기반을 흔들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발견은 물리학자들이 과학적 발견으로 선언하는 신뢰도 5시그마(우연일 확률 약 350만분의 1)에 미치지 못한 4.2시그마(우연일 확률 약 4만분의 1)이다. 암흑 에너지가 상수라는 기존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향후 암흑 에너지의 변동에 따라 우주 종말 가설에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현재 모형에 따르면 우주가 끝없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별이 탄생할 수 없게 되는 ‘빅 프리즈(Big Freeze)’ 가설이 우세하다. 하지만 암흑 에너지가 계속해서 약화하면 우주의 팽창이 중단되고, 우주가 다시 한 점으로 수축한다. 역(逆)빅뱅인 셈인 이 가설을 ‘빅 크런치’라고 한다. 반대로 암흑 에너지가 커진다면 우주 팽창 속도가 너무 빨라져 모든 물질과 공간을 찢어버리는 ‘빅 립(Big Rip)’에 이를 수 있다.
◇암흑 에너지 비밀 밝힌다
DESI는 물질이 우주 전체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 연구해 암흑 에너지의 영향을 추적했다. 우주 초기에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생긴 패턴인 중입자 음향 진동을 눈금자처럼 활용해 암흑 에너지 밀도를 파악한 것이다. DESI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약 4000만개의 은하와 퀘이사를 측정한다는 계획이다.
암흑 에너지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인류의 시도는 우주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2023년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관측하기 위한 우주망원경 ‘유클리드’를 발사했다. 지난해 은하 1400만개와 우리 은하 내부의 별 수천만 개를 포함한 우주 지도를 발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 중인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역시 암흑 에너지를 연구하기 위해 설계됐다. 이형목 천문연 중력파우주연구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현대 우주론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인 암흑 에너지의 성질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표준 우주 모형 이론에서 전제하는 우주의 구성 성분. 암흑 물질은 입자 형태지만 빛에 반응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암흑 에너지는 중력과 반대로 우주를 끊임없이 팽창시키는 에너지다. 표준 우주 모형은 암흑 물질이 빛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암흑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