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를 뒤흔든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이제 갓 마흔인 1985년생 량원펑(梁文鋒)이 창업했다. 딥시크의 핵심 개발자로 알려진 뤄푸리(羅福莉)는 1995년생으로 올해 서른이다. 두 사람 외에도 딥시크에는 ’2030′ 개발자와 엔지니어가 주축을 이룬다.

딥시크는 많은 자본 없이도 젊은 인재의 힘으로 실리콘밸리 빅테크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9일 젊은 과학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딥시크는 젊은 연구자가 개발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젊은 과학자의 창의적인 도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국판 딥시크가 나오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선비즈는 이날 최 권한대행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젊은 과학자들과 같은 날 열린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과학자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첨단과학기술 분야 젊은 과학자와의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기획재정부

◇30대 단장 없는 IBS…해외처럼 기회 달라

최 대행 간담회에 참석한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1982년생인 김 교수는 지난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 중 최상위 등급인 글로벌 리더연구자에 선정됐다. 40대 초반이지만 이미 국내 고체물리학과 응집물질물리학 분야에서는 리더로 꼽힌다.

김 교수는 “젊은 연구자에게 리더 연구를 맡긴다던가 하는 파격적인 투자를 했을 때 예상 못한 좋은 성과가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에 갈수록 R&D 투자가 보수적으로 흐르면서 젊은 연구자에게 파격적인 기회가 잘 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에 젊은 과학자가 부족한 현실을 꼬집었다. IBS 연구단장은 연구비 부담 없이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한 자리로 꼽힌다. 젊은 과학자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적 연구를 할만 한 자리지만, 대부분 이미 성과를 인정받은 과학자들이 맡는다. 현재 IBS에는 30개 연구단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젊은 단장이 48세인 구본경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다. 1960년대생 연구단장이 대부분이다 보니 90학번 단장도 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IBS가 모델로 삼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다르다. 40대 초반은 물론이고 30대 연구단장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23년에는 강사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가 막스플랑크연구소 기후과학연구소 단장에 임명됐는데 당시 나이가 42세였다. 지난해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 임명된 차미영 KAIST 교수도 44세였다. 차 교수는 IBS에서 연구단장 아래 CI(Chief Investigator·수석연구자급)를 맡고 있었는데, 막스플랑크에서는 단장으로 영입했다.

김 교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젊은 과학자를 과감하게 단장으로 뽑는다”며 “젊은 과학자에게 기회를 줘야 10년, 20년 뒤에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 대행 간담회에 참석한 박성준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교수도 “국내 정부 R&D 과제가 집단 과제, 개인 과제로 나뉘는데 젊은 과학자를 도와줄 수 있는 종류의 대형 과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해외에는 이런 종류의 과제가 많은데 국내에는 충분하지 않다 보니 정부가 신경을 써 달라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강사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기후과학연구소 단장.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로 있다 막스플랑크 단장에 임명될 때 42세에 불과했다./조선비즈

◇공무원이 정하는 ‘톱-다운’ 과제가 너무 많다

비만 치료제의 원리를 최초로 밝혀낸 서울대 뇌인지과학과·해부학교실 최형진 교수는 과기정통부가 연 R&D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가 연구 주제를 정하는 방식의 ‘톱 다운(top down·하향식)’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고 했다.

최 교수는 “국가가 계획을 세우고 연구자들이 따라가는 후진국형 톱 다운 구조는 그만두고 기초연구 예산을 자율 주제로 풀어서 교수나 연구자가 혁신적인 제안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정부 과제 기획이나 예비타당성조사에도 참여해 봤지만, 톱 다운 방식의 기획은 기술 혁신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고 몇 년 지난 후에는 모든 게 바뀌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를 믿고 맡겨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연구관리 기관이 연구자에게 중간 중간 연락해서 ‘이게 틀렸다’ ‘저게 틀렸다’는 식으로 훈수를 둔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행 간담회에 참석한 또 다른 젊은 과학자도 정부가 연구 주제를 정해주는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2대 전략기술 위주로 R&D 과제가 내려오다 보니 기초연구를 하는 과학자 입장에서는 연구의 다양성을 챙기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 교수도 “톱 다운 방식 과제보다는 연구자가 주제를 정하면 거기에 맞는 과제가 생기는 바텀 업(bottom-up) 과제가 더 늘어야 한다”고 했다.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 공청회' 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실패 용인하고, 트렌드 쫓지 않는 문화 만들어야

성공을 강요하는 연구 문화와 분위기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혁신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실패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국내 R&D 체계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다 보니 연구자들이 안전한 연구만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여화수 KAIST 건설및환경공학과 교수는 “연구자들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말했다. 매년 국가 R&D 상공률이 90%를 넘을 만큼 실패 위험이 있는 도전적 연구 과제를 회피하는 풍토란 것이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노력하다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걸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실패가 가능한 R&D 체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훈 카카오 AI safety 리더도 “실패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에서 R&D가 진행돼야 한다”며 “기존의 R&D 체계는 수월성과 형평성의 관점에서 균형을 찾아갔다면 앞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월성에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R&D는 축적의 시간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을 거쳐 한국화학연구원 이차전지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세희 선임연구원은 “최 대행과의 간담회에서 연구자의 성과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대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언급도 있었다”며 “출연연의 행정 업무나 지원 업무에 대해서도 ‘역할과 책임(R&R)’을 분명하게 구축해달라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서 딥시크 애플리케이션이 구동하는 모습과 창업자 량원펑. /AP연합·위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