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대교에 '한번만 더' 동상이 설치돼 있다./뉴스1

감염병 확산 과정을 분석했던 보건 연구자들이 미국에서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이후 자살이 늘어난 베르테르 효과를 보여주는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 소규모 집단이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이런 현상을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프리 샤만(Jeffrey Shaman) 컬럼비아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연구진은 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2014년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 2018년 패션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와 요리사 앤서니 보데인의 자살이 미국 전역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베르테르 효과는 괴테의 소설에서 자살한 주인공 베르테르의 이름을 땄다. 한국에서는 배우 이선균이 작년 12월 세상을 떠난 이후 올해 초 자살 사망자가 크게 늘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테르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3가지 사건 전후로 미국 내 자살 예방 핫라인 988과 국가사망통계시스템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유명인의 자살 이후 베르테르 효과가 퍼지는 과정을 수치로 나타냈다. 모델에 따르면 2014년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일반인이 자살을 생각할 가능성이 10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실제로 자살 예방 핫라인에 걸려 온 전화 통화 수가 급증했고, 자살 사망자 수는 평년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2018년에 케이트 스페이드와 앤서니 보데인이 3일 간격으로 자살한 뒤에도 자살 사망자 수가 윌리엄스 사례와 비슷하게 늘었다. 자살 관련 생각이나 행동 변화와 같은 영향은 절반 정도였다. 연구진은 두 사람은 윌리엄스보다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덜 받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과 2018년 사건으로 인한 베르테르 효과는 모두 약 2주 동안 지속됐다.

샤만 교수는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모델을 개발한 보건학자이다. 그는 “자살도 감염병이 확산되는 방식으로 전파된다”며 “이번에 개발한 모델은 감염병 확산 모델처럼 실시간으로 자살 전염이나 위험을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유명인의 자살이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며 “모델링 접근 방식이 자살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서는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유명인 자살 정보 전달 방식을 개선하고, 적절한 정신 건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q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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