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 술인 사케와 우리 술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술을 만드는 데 쌀과 물, 누룩(효모)만 쓴다는 점에서 우리 술과 사케는 닮아 있다. 그런데 맛을 보면 우리 술과 일본의 사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우리 술은 쌀과 물, 누룩이라는 단순한 재료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술마다 개성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전문가들은 ‘누룩’이 우리 술과 사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한다. 누룩은 된장을 만드는 메주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누룩은 밀이나 보리, 쌀 같은 전분질 원료에 자연의 곰팡이가 배양된 발효제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누룩을 이용해서 술을 빚는 건 동아시아가 동일한데 일본은 입국이라는 발효제를 사용하고 우리는 누룩이라는 발효제를 쓴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한영석의 발효연구소는 전통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14일 방문한 발효연구소 내 발효실의 모습. 누룩에 곰팡이 균주가 내려 앉아 있다./정읍=이종현 기자

누룩과 입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균’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입국은 인위적으로 하나의 균주만 자라게 하는데 비해 누룩은 자연 환경에서 배양하다보니 공기 중 곰팡이나 효모, 유산균 같은 다양한 야생 미생물이 누룩에서 자란다. 입국은 알코올과 향을 내기 위해 효모를 따로 첨가해야 하는데,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있어 효모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

김혜련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일본 입국은 한 균주만 자라게 하기 때문에 맛이 단조로운데, 우리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내는 효소 덕분에 복잡미묘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우리 술의 차별화 포인트 ‘전통누룩’

“봄에서 여름을 거쳐서 가을까지 이어지는 계절의 시계를 우리가 복원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룩이 발효되는 45일 동안 발효실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주는 방식입니다.”

봄 기운이 물씬나던 지난 3월 14일,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전라북도 정읍으로 향했다. 전통누룩으로 우리 술을 빚는 명인인 한영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정읍역에서 택시를 타고 내장산 자락을 향해 25분 정도 가자 커다란 내장저수지를 끼고 있는 한영석 발효연구소가 모습을 보였다.

한 대표는 국내 최초의 ‘누룩 명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가 2020년 7월 한 대표를 전통발효 누룩 명인 1호로 지정했다. 한 대표는 고문헌 속의 전통누룩을 복원하고 있다. 녹두와 찹쌀이 2대 1의 비율로 들어가는 백수환동국 같은 전통누룩이 대표적이다. 이날은 모처럼 날이 맑은 덕분에 오랜만에 새로운 누룩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대표가 안내한 발효실에 들어가자 이날 띄운 누룩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제 막 성형을 한 누룩은 아직 곰팡이가 피지 않아 새하얀 모습 그대로였다.

한영석 발효연구소의 한영석 대표가 직접 만든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대표는 고문헌 속 전통누룩을 복원해 우리 술을 빚는 명인이다./정읍=이종현 기자

바깥은 아직 바람이 불면 쌀쌀한 기운이 돌았지만 발효실은 꽤나 무더웠다. 온도와 습도를 묻자 20도를 조금 넘는 온도에 습도는 80%가 넘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초복 정도의 날씨를 재현한 것이다. 한 대표가 만드는 전통누룩은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계절 변화를 45일로 줄인 발효실에서 발효를 한다. 일반적인 누룩 발효 기간이 20일 정도인 것에 비하면 두 배나 긴 셈이다. 한 대표는 “발효 기간을 늘려서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늦추면 향이 더 좋아지고, 발효취를 없앨 수 있다”며 “전통누룩은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 넘게 전통누룩 복원을 하고 있는 한 대표는 ‘누룩’이 우리 술의 핵심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입국을 이용하는 일본의 사케 제조법이 단순히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를 얻는데 그친다면, 우리 술의 전통누룩은 곰팡이를 이용해 다양한 효소를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효소들이 단순히 전분만 분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단백질이나 비타민 같은 여러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전통누룩은 일반적으로 밀이나 보리, 쌀로 만든다고 여겨지지만, 한 대표는 옥수수, 조, 수수, 감자, 고구마 등 수많은 곡류를 이용해 누룩을 띄우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곡물의 종류에 따라 누룩으로 빚는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한 대표는 “누룩은 변수가 많은데 이 변수에서 다양한 맛과 향이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 술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일본의 사케나 중국의 고량주 같이 이미 알려진 술들과 차별화돼야 하는데 그 차별화의 포인트가 누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 누룩을 만드는 과정. 위쪽은 발효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누룩에 곰팡이가 내려 앉아 있는 모습. 발효가 끝난 누룩은 포자를 걷어내고 햇볕에 소독한 뒤 파쇄해서 다시 햇볕에 말린다. 이후 곱게 빻으면 누룩이 완성된다. 아래쪽은 파쇄해서 햇볕에 말리고 있는 누룩의 모습./정읍=이종현 기자

◇누룩 속 미생물이 맛과 향을 결정

누룩은 인위적으로 균주를 접종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수많은 미생물이 자리 잡는다. 누룩 속의 곰팡이나 효모, 유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술의 맛과 향을 결정한다. 문제는 누룩에 있는 어떤 미생물이 어떤 맛과 향을 내는데 영향을 주는 지 정확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술을 빚는 양조 현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한 대표도 “미생물에서 만들어지는 향은 맡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인공적인 가향보다 발전 가능성이 크다”면서 “문제는 어떤 미생물이 어떤 향을 내는지 정확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누룩 속의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누룩의 미생물을 연구하는 거의 유일한 국내 연구기관이다. 김혜련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국에 있는 큰 누룩공장이나 시골 오일장을 누비면서 300개가 넘는 누룩을 수집해서 그 안의 미생물을 분리하는 연구를 10년도 전에 이미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식품연은 단순히 누룩을 수집만 한 게 아니라 고문헌 속 전통누룩을 복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복원한 누룩을 보급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식품연은 누룩에서 과일 향을 내는 효모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 98-5′를 찾아내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는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로 유명한데, 식품연이 찾아낸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는 기존에 알려진 효모와 차이가 있었다. 맥주를 만들 때 주로 쓰이는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S288C’와 비교해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98-5′는 향을 결정하는 유전자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누룩 속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Saccharomyces cerevisiae) 98-5 균주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림은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 98-5의 18S rRNA 염기 서열./한국식품연구원

이런 미생물은 지역에 따라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울과 대전, 대구와 포항에서 만들어진 누룩은 같은 제조법을 쓰더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미생물이 확인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누룩 속 미생물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2~3년 전에 전통누룩 20~30개를 수거해서 사카로마이세스 세레비지애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는데 과거와 비교해 줄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기후와 환경의 변화가 누룩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누룩 속 미생물을 찾기 위한 시도는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농촌진흥청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한 ‘전통누룩 특성평가 및 발효산물 대사체 해석’ 연구개발(R&D) 사업은 누룩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미생물 대사체와 단백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 전북대와 원광대 연구진은 가수비율과 발효온도에 따라 누룩에서 어떤 미생물이 생성되는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연구진은 연구보고서에서 “전통누룩에서 당화력과 향미 생성, 발효 특성이 우수한 균주를 분리하고 개량하기 위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며 “국내에서 이뤄진 관련 연구는 일본 사케 제조에 쓰이는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어서 전통누룩에 대한 기초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소주·경탁주’ 우리 술 열풍에도 누룩 연구는 축소

가수 박재범이 2022년 출시한 증류식 소주 브랜드 ‘원소주’는 큰 인기를 얻었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희석식 소주와 다른 증류식 소주 열풍의 주역이었다. 최근에는 가수 성시경이 출시한 탁주인 ‘경탁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모두 연예인이 만든 우리 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 술이 어느 때보다 큰 인기를 끌고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 술을 과학화하려는 시도나 투자는 줄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에 있던 우리술연구센터는 연구팀으로 축소됐다가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 전통식품연구단 소속으로 몇몇 연구자들이 누룩과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개별적으로 이어나갈 뿐이다. 우리 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는 별개로 공적인 연구 환경에서는 술을 터부시하는 모순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가수 성시경이 만든 경탁주. 박재범의 원소주에 이어 우리 술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제이1 농업회사법인 캡쳐

2010년대까지만 해도 누룩의 미생물을 찾아내고 종균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관련 연구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연구도 중단 상태다. 김 책임연구원은 “술을 터부시하는 사회문화적인 분위기 탓에 술을 내세운 연구개발은 진행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며 “차세대 염기서열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술에 유용한 특정미생물을 분리하고 개량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졌지만 연구 예산이 없다보니 관련 연구가 모두 멈춰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동안 우리 술이나 전통식품에 필요한 종균의 상당수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국내 발효식품에 이용되는 미생물은 일본산 종균이 국내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식품첨가물 수입 비용으로만 88억원이 쓰였는데, 상당수가 발효 종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2014년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생물자원 부국들의 생물자원 보호 조치가 강해지고 있고, 생물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이 발효 미생물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은 종균 개발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전통식품의 발효 균주 개발과 확보를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룩에 대한 연구는 우리 술의 품질을 올리고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술에 대한 비판 중의 하나는 품질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누룩의 품질이 일관되지 않아서다. 최근에는 누룩의 제조법이 발전하면서 우리 술의 맛과 품질도 안정화되고 있다.

이대형 연구사는 “누룩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면 발효 방법의 오차를 줄여서 품질을 일정하게 하고 이런 결과를 과학화, 현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누룩을 이용해서 좋은 술을 만드는 방법, 누룩 자체에 대한 연구도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The Journal of Nutritional Biochemistry(2022), DOI : https://doi.org/10.1016/j.jnutbio.2022.109036

한국식품과학회(2022), DOI : https://doi.org/10.23093/FSI.2022.55.4.381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2021), DOI : https://doi.org/10.3746/jkfn.2021.50.12.1392

농촌진흥청(2017), DOI : https://doi.org/10.23000/TRKO201700006302

JMB(2017), DOI : https://doi.org/10.4014/jmb.1610.10039

Biotechnology for Biofuels(2016), DOI : https://biotechnologyforbiofuels.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13068-016-0653-4

한국균학회지(2012), DOI : https://doi.org/10.4489/KJM.2012.40.4.187

한국균학회지(2012), DOI : https://doi.org/10.4489/KJM.2012.40.4.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