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앤드미(23andMe)의 가정용 유전자 검사 키트./23앤드미

한때 8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올린 미국 DTC(소비자 직접 시행) 유전자 검사 업체인 23앤드미(23andMe)가 파산했다. 매출 감소와 해킹 사건 등의 여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국내 유전자 검사 기업들도 사업을 축소하거나 청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유전자는 평생 거의 변하지 않아 재검사 수요가 낮다.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산업 전반의 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앤드미는 24일(현지 시각)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했다고 밝혔다. 23앤드미는 대표적인 DTC 유전자 검사 업체이다. 소비자가 혈액이나 침을 직접 채취해 회사에 보내면 유전자 분석결과를 제공한다. DTC 업체를 이용하면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할 필요가 없고, 일부 유전자 염기서열만 분석해 검사결과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3앤드미는 창업 초기부터 미국 구글의 투자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개인의 혈통이나 유전질환 여부를 알려주는 서비스 외에 수집한 유전자 데이터를 신약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2021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의 합병 방식으로 나스닥 시장에 우회 상장해 한때 시가총액이 60억달러(8조800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10월 해킹 공격으로 약 700만명의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 재정적 어려움이 커졌다. 유출 정보에는 고객의 이름과 주소, 인종정보 등이 포함됐다.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앤 워치츠키(Anne Wojcicki)는 파산 신청과 함께 CEO(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앤 워치츠키는 구글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전 아내이자 지난해 암으로 사망한 수잔 워치츠키 전 유튜브 CEO의 동생이다.

상황이 어려운 건 23앤드미뿐만이 아니다. 현재 유전자 분석·검사 서비스 기업이 전반적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하고 있다. 세계 최대 유전자 분석장비 업체인 미국 일루미나도 중국 BGI 지노믹스, 스위스 로슈 등 경쟁업체가 부상한 데다 관세 전쟁 중에 중국의 수입 금지 조치까지 맞물리며 주가 하락세가 이어졌다. 회사는 올해 연간 수익 전망도 하향 조정하며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EDGC의 유전자 기반 DNA혈통분석 서비스 '유후'./EDGC

국내 유전자 검사 시장도 성장은 더 더디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은 글로벌 DTC 유전자 검사 시장이 2021년 14억달러(한화 2조원)에서 2028년 33억 2000만달러(4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국내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3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유전체 분석 기업 마크로젠(038290)은 지난 2022년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뒤 2년 연속 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마크로젠의 미국 관계사 소마젠도 실적 하락을 겪고 있다. 회사는 DTC 외에도 대학·병원·정부기관 등과 B2B(기업간거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유망주였던 EDGC(245620)(옛 이원다이애그노믹스)는 유동성 악화로 지난해 8월부터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며 공개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DTC 유전자 검사 업체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재검사율이 높아야 하는데, 유전자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이 적다. 특정 유전자와 질병과의 연관 관계가 새롭게 밝혀지면 재검사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서비스에 반영되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린다.

정부 규제도 시장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7월 DTC 유전자 검사 산업을 키우기 위해 ‘유전자 검사 역량 인증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규정된 시설과 인력을 갖춰 역량을 인증받은 기업만 DTC 유전자 검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업체들은 기술 개발 후 인증을 받는 데에만 1년 여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인증을 받은 후에도 판매 경로와 서비스 항목 등을 일일이 신고하고, 홍보자료 변경 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기업들의 사업 성장에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생각만큼 성장하지 않고 규제도 맞추기 힘들다 보니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들도 나왔다. 현재까지 DTC 인증을 받은 기업은 15개다. 이 가운데 바이오니아(064550)가 지난해 8월 사업을 중단했고, 엔젠바이오(354200), 클리노믹스(352770), 지니너스(389030)는 지난해 재인증을 포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 산업이 제대로 안착하지도 않았는데, 인증제 때문에 실질적인 상업화나 수익 창출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기술력과 안전성만 입증되면 곧바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인증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