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인 T세포의 전자현미경 사진. /NIAID

사노피, 애브비, 존슨앤드존슨(J&J)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가면역질환 치료 신약 개발을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은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부터 몸을 지켜줘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이다. 공격 부위에 따라 류머티즘성 관절염, 1형 당뇨, 루푸스, 크론병 등 100여개 질병으로 나타나는데 아직은 획기적인 치료법이 없다.

제약사들이 아직 경쟁이 적은 블루오션을 두고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군) 확보에 나선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면역 치료제 시장 규모는 2559억달러(약 375조원)로, 2029년까지 연평균 15.3% 증가해 5806억달러(약 85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신약 후보 물질 가진 회사들 잇따라 인수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Sanofi)는 미국 바이오기업 드렌바이오(Dren Bio)의 ‘DR-0201(개발코드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선급금 6억달러(약 8797억원)를 비롯해 총계약 규모는 13억달러(약 1조 9060억원)다.

사노피와 드렌바이오에 따르면, DR-0201은 온몸에 발진이 생기는 루푸스를 비롯한 B세포 매개 자가면역질환군에 치료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 후보 물질이다. B세포는 외부로부터 침입한 항원에 대항해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세포이다. 하지만 B세포가 과도하게 활동하면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생긴다.

DR-0201은 전임상과 초기 임상 연구에서 B세포를 강력하게 제거하는 효과를 보였다. 드렌바이오는 현재 자가면역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 시험을 하고 있다. 사노피는 DR-0201에 대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에서 새 가능성을 제시하는 잠재적인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치료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와 존슨앤드존슨(J&J)은 그동안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을 주도했다. 애브비의 휴미라는 2003년 출시부터 10년 동안 단연 매출 1위 의약품이었다. 누적 매출은 300조원을 넘었다. J&J의 스텔라라도 지난해 매출이 15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오리지널약의 특허 만료로 시장 독점권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이에 대응해 새로운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잇달아 사들였다. 휴미라의 주요 미국 특허는 2016년 만료됐고 2020년을 기점으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잇달아 나왔다. 스텔라라의 물질 특허도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2023년과 2024년 만료됐다.

애브비는 지난해 12월 2억달러(2935억원) 규모에 미국 님블 테라퓨틱스(Nimble Therapeutics)를 인수했다. 님블은 2019년 스위스 제약사 로슈로부터 분사한 회사로, 건선과 염증성 장 질환(IBD) 치료제로 개발 중인 경구용 인터루킨(IL)-23R 저해제를 포함해 여러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애브비는 휴미라 주요 미국 특허 만료 후에도 130건에 달하는 특허를 앞세워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을 2023년까지 늦췄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고 1년 뒤 새로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한 것이다. 인터루킨은 면역신호물질이다. 님블의 신약 후보 물질은 이를 막아 과도한 면역반응을 차단하는 원리다.

J&J도 지난해 비슷한 기술을 가진 미국 바이오기업 프로테오로직스(Proteologix)를 사들였다. 인수 규모는 8억5000만달러(약 1조2472억원)였다. 프로테오로직스가 보유한 PX128(개발코드명)은 인터루킨-13(IL-13)과 흉선간질성 림프구 신생인자(TSLP)를 표적으로 삼는 이중특이항체로, 임상 1상 시험을 앞둔 가운데 인수 계약이 이뤄졌다. 프로테오로직스는 인터루킨 22(IL-22)를 표적으로 삼는 이중특이항체도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 로슈, 미국 머크(MSD), 일본 다케다 등도 인수,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강화해 왔다. MSD는 2023년 미국 바이오기업 프로메테우스 바이오사이언스(Prometheus Bioscience)를 108억 달러(약 15조원)에 인수해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MSD는 이 회사가 보유한 염증성 장 질환 치료제 신규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그래픽=정서희

◇성공하면 바로 수십조원 연 매출 가능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에 앞다퉈 투자하는 이유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수십조원의 연 매출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애브비의 휴미라는 특허 만료 전인 2022년 연 매출만 212억 3700만 달러(약 31조원)에 달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는 일단 시장도 크다. 유럽과 북미의 경우 전체 인구의 5%가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가면역질환자가 늘었다는 학계 연구도 있다.

자가면역질환은 발병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아 아직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 블록버스터라도 자가면역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약을 투여해 면역을 조절하면 관리가 가능하다. 제약사 입장에선 매출이 꾸준히 나온다는 의미다.

정재현 고려대안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루푸스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발병 후 5년 생존율이 5%도 되지 않는 아주 치명적인 질환이었다”며 “그동안 의료 기술과 치료제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꾸준히 치료하면 조절 가능한 질병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자가면역질환은 발생 부위가 달라도 기본적으로 면역체계는 같기 때문에 치료제 하나만 잘 개발하면 적응증 확대도 쉽다. 휴미라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처음 허가를 받은 이후 건선성 관절염, 강직 척추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건선 등 10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스텔라라도 적응증이 크론병, 판상건선, 건선성 관절염, 궤양 대장염 등 4종이다.

국내사 중에선 한올바이오파마(009420)가 미국 파트너사 이뮤노반트(Immunovant)와 함께 ‘바토클리맙’을 다양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회사는 중증근무력증에 대한 임상 3상과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 임상 2b상에서 바토클리맙의 유효성(치료 효과)을 확인했다고 이달 발표했다. 올해 하반기 갑상선안병증에 대한 임상 3상 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다.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 동아에스티(170900), 대웅제약(069620), LG화학(051910) 등은 휴미라, 스텔라라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