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 시장을 강타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코올 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첫 번째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전까지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추적 연구로 위고비의 알코올 중독 치료 효과가 예상된다는 연구는 꾸준히 나왔으나, 실제 임상시험으로 이를 확인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찬 헨더쇼(Christian S. Hendershot)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미 의사협회지(JAMA) 정신의학’에 알코올 중독(AUD·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에게 주 1회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해 음주량과 과음 빈도를 낮추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물질로, 위고비의 주요 성분이다.
연구진은 2022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알코올 중독 환자 48명을 모집해 9주간 매주 1회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하는 임상시험 2상을 진행했다. 참가자 절반은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하고, 나머지 절반은 가짜 약(위약)을 투약해 알코올 중독 증상 치료 효과를 비교했다.
참가자들은 임상시험 전·후로 원하는 술을 제공받은 뒤 50분간 기다리면 이후 2시간 동안 원하는 만큼 음주할 수 있는 자율섭취 평가를 했다. 매주 음주량을 스스로 기록하고 알코올 중독 진단 기준 중 하나인 음주갈망평가(PACS) 점수도 측정했다.
그 결과,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한 환자들은 주간 음주량이 41% 감소하며 알코올 중독 증상이 크게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폭음 일수는 84%, 음주갈망 점수는 39% 감소했다. 다만 하루 평균 음주량에서는 별다른 감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완전한 금주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알코올 중독 증상 완화와 함께 부가적인 건강 개선 효과도 얻었다.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한 환자들은 평균 체중이 5% 감소했으며, 흡연자는 하루 평균 담배 소비량이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으로는 기존에 알려진 위장 장애로 인한 메스꺼움과 설사 등이 일부 관찰됐다.
연구진은 “1951년 미 식품의약국(FDA)이 최초의 알코올 중독 치료제인 디설피람을 승인한 후 지금까지 새로 허가받은 치료제는 2건에 불과하다”며 “추가적인 연구로 세마글루타이드가 알코올 중독 치료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된다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세마글루타이드의 알코올 중독 치료 효과를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전에도 세마글루타이드를 비롯한 GLP-1 계열 물질은 알코올 중독, 오피오이드(아편계 진통제) 중독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가 여럿 나오면서 다목적 치료제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대한 효능은 임상시험이 아닌 데이터 분석으로 이뤄지면서 의료계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 발표로 추후 관련 연구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진은 “임상시험 3상을 통해 고용량으로 장기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세마글루타이드 외에도 GLP-1 계열 물질의 효능에 대해서도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JAMA Psychiatry(2025), DOI: https://doi.org/10.1001/jamapsychiatry.2024.4789